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사라진 토종 홍합… 선박 평형수에 딸려온 유럽 홍합 때문

입력 : 2019.08.29 03:00

[선박 평형수와 해양생태계 교란]
배가 너무 가벼우면 균형 잡기 힘들어 일정한 무게 유지하려고 바닷물 채워
이 나라에서 채우고 저 나라에서 빼며 매년 7000종 해양생물이 덩달아 이주
우리나라 참게도 미국·독일 건너가 생태계에 번지며 피해 입혔어요

지난달 울산지방해양수산청은 울산항에 입항하는 배들의 선박 평형수(Ballast Water)를 철저히 점검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부두에 정박한 배들이 평형수를 쏟아낼 때 유해 해양생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선박 평형수는 무엇이고, 평형수를 버리는 과정에서 유해 해양생물이 들어온다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배 균형 잡아주는 선박 평형수

선박 평형수는 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배 안에 있는 탱크에 채워 넣는 바닷물을 뜻해요. 화물선이라고 늘 짐을 가득 싣고 있지는 않아요. 배에 실린 화물을 목적지에 도착해서 모두 내리면 배가 평소보다 가벼워집니다. 그러면 부력에 의해 배가 위로 떠서 물에 잠기는 부분이 평소보다 줄어듭니다.

이렇게 되면 배의 무게중심이 높아져, 아차 하면 배가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어요. 또 물에 잠기는 선체 부분이 줄어들면서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스크루 프로펠러가 수면 밖으로 나와 헛도는 일도 생깁니다.

[재미있는 과학] 사라진 토종 홍합… 선박 평형수에 딸려온 유럽 홍합 때문
/그래픽=안병현
평형수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필요합니다. 배가 최소한의 무게를 유지하도록 바닷물을 채워넣는 것이죠. 대부분의 배는 선체의 좌우 또는 아래에 커다란 평형수 탱크를 만들어 두고 이곳에 적절한 양의 바닷물을 채워두고 항해합니다. 예를 들어 짐이 꽉 차 있을 때는 평형수를 내보내고, 짐을 모두 비운 상태면 평형수 탱크를 가득 채워서 배의 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거예요. 배가 한쪽으로 기울 때는 좌우 평형수 탱크에 들어간 물의 양을 조절해서 균형을 잡아주고요.

평형수가 생태계 교란 일으켜

선박은 항구에 정박해 짐을 실으면서 평형수를 바다로 내보냅니다. 다음 항구에 가서 짐을 내리면서 평형수를 도로 채우고요. 이렇게 바닷물을 싣고 버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평형수에 들어 있던 해양생물이 본래 살던 곳을 떠나 다른 나라로 이동하게 됩니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선박 평형수로 쓰이는 바닷물은 매년 약 100억t 규모입니다. 이 물을 넣고 빼는 과정에서 매년 약 7000종에 달하는 해양생물이 '이사'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낯선 환경에 놓인 외래종은 보통은 바닷물 온도 변화, 염분 변화 등에 적응하지 못해 죽지만, 유독 생명력과 적응력이 뛰어난 종류는 살아남아 크게 번성하지요. 낯선 종이라 포식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왕성하게 번식하고, 결국 해양 생태계가 교란됩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황소개구리가 우리 생태계에 과도하게 퍼졌던 걸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거예요.

국산 홍합 원산지는 지중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흔히 '홍합'이라며 즐겨 먹는 패류는 우리 조상들이 먹던 토종 홍합이 아니라 유럽 지중해가 고향인 '지중해산 담치'입니다.

지중해산 담치는 1950년대부터 선박 평형수를 통해 유입돼 토종 홍합 서식지를 침범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토종 홍합은 거의 자취를 감췄어요. '홍합탕'에 들어있는 홍합은 대부분 지중해산 담치를 양식한 겁니다. 우리나라 앞바다에서 길렀으니 '국산'이지만, 품종은 외래종이죠.

해안가 갯바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따개비도 대부분 유럽산입니다. '주걱따개비'라는 종류인데 2005년 경상도 부근 동해안에서 처음 발견됐어요. 태평양과 대서양을 오가는 외항선을 통해 우리 해안에 떨어져 정착한 거죠. 생물학자들은 왕성한 번식력을 보이는 외래종 따개비가 결국 토종 따개비를 몰아낼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 해양생물이 선박 평형수에 실려 외국으로 옮겨가 피해를 입힌 경우도 있습니다. 민물에서 살다가 바다에 가서 번식하는 '참게'가 주인공인데요, 20여 년 전 배를 타고 독일과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곳 생태계에 번졌어요.

요즘은 대규모 화물선을 이용한 국가 간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평형수를 통해 유해생물이 퍼지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2004년 만들어진 평형수 협약… 우리나라 포함한 52개국 가입]

국제해사기구는 2004년 '선박 평형수 관리협약(BWMC)'을 만들었어요. 평형수 이동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서랍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52개 국가가 가입하고 있어요.

이 협약에 따르면, 외국으로부터 입항하는 선박은 해당 국가 해안선에서 200해리(약 370㎞) 이상 떨어진 공해상에서 수심 200m 이상인 지점을 골라 평형수를 교환해야 합니다. 평형수에 들어 있는 외래종 때문에 생태계가 교란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지요.

해양 생물을 사멸하는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BWTS)' 설치도 의무화했습니다. 평형수를 버리기 전에 전기분해, 자외선 투사, 화학약품 처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양 생물을 말끔히 제거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2017년 이후 건조하는 선박은 국제해사기구와 자국 정부의 승인을 받은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있습니다. 2017년 이전 건조된 선박도 오는 2024년까지는 이 장치를 달아야 해요.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