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 뉴스 따라잡기] 제2 천안문 사태와 자본 유출 우려… 무력 진압 주저

입력 : 2019.08.23 03:09

홍콩 시위와 중국의 대응

최근 홍콩 시위대가 홍콩국제공항을 점거한 뒤, 항공 대란을 일으킨 걸 양해해 달라는 내용의 인상적인 게시판을 내걸었어요. 거기 적힌 문구는 이랬어요.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다만 저희는 홍콩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 주 들어 홍콩 각급 학교가 개학했지만, 학생 시위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어요. 규모로 보나 빈도로 보나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예요.

천안문 사태의 그림자

홍콩이 중국 정부에 반기를 들고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중국 정부가 언제 군 병력을 홍콩에 보낼지 모른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돌았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베이징은 꽤 영리하게 대응했어요.

홍콩에는 중국 병력이 주둔 중이에요. 하지만 아직은 부대 안에만 머물고 있죠.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는 판국에 군대가 거리로 나서면 자칫 유혈 사태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1972년 북아일랜드 사태 때 영국에서 벌어진 일이 바로 그랬어요. 1980년 한국 광주에서도 마찬가지 사태가 벌어졌지요.

실제로 중국 정부는 1989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 시위를 잔혹하게 진압했다가 국제사회에서 명성은 땅에 떨어졌어요. 중국 공산당은 그 점을 잘 기억하고 있기에, 그때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은 낮아 보여요.
지난 12일 홍콩 시위대 한 사람이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중입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홍콩국제공항에 서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홍콩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있어요. 대신 인터넷을 철저하게 통제하며 시위대 주장이 중국 본토에서 지지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어요.
지난 12일 홍콩 시위대 한 사람이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중입니다”라는 팻말을 들고 홍콩국제공항에 서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홍콩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고 있어요. 대신 인터넷을 철저하게 통제하며 시위대 주장이 중국 본토에서 지지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어요. /EPA 연합뉴스
과거 중국은 티베트와 신장에서 일어난 분리독립운동을 강경하게 진압했어요. 하지만 티베트나 신장 주민들과 달리 홍콩 주민들은 대륙 저편 외진 땅에서 외부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는 소수민족이 아니에요. 홍콩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국제도시로 번영해왔어요. 국제적인 금융 허브이자 기업의 중심지, 관광지로 통하죠.

중국 군대가 진압봉과 총으로 홍콩 시위대를 무너뜨리면 중국 정부는 이중의 타격을 입게 됩니다.

우선 중국 정부는 '인권 탄압'의 오명을 뒤집어쓸 거예요. 또 중국이 홍콩 시위를 무력 진압하고 홍콩을 직접 통치하겠다고 나서면, 홍콩 시장경제는 재앙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거예요. 자본이 외부로 빠져나갈 테니까요.

중국 정부는 중국 건국 기념일인 10월 1일 전까지는 시위가 진정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해요. 그들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홍콩 시위가 홍콩 경계를 넘어 중국 본토로까지 번질 것이냐' 하는 점이에요.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요? 홍콩 시위대는 홍콩에 국한된 이슈를 놓고 싸우고 있어요. 홍콩 주민들은 지난 4월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추진하면서 시위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송환법은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 조약을 맺지 않은 나라에도 범죄인을 보낼 수 있게 허용하는 내용이에요.

홍콩 주민들은 "이 법이 통과되면, 홍콩 정부가 반중 인사를 중국 본토에 보낼 수 있다"고 반대했지요. 홍콩 주민들에겐 중요한 사안이지만, 중국 본토 주민들에겐 아무 관련 없는 사안이에요. 실제로 중국 국민은 홍콩 시위에 거의 공감을 표하지 않고 있어요.



인터넷이 자유를 전파할 줄 알았건만

이런 현상은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인터넷이 자유로운 정보 유통과 소통을 돕고 자유를 증진시킬 거라고 그동안 많은 사람이 믿어왔어요.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았어요.

중국 정부는 놀라울 만큼 효율적으로 인터넷을 통제해왔어요. 중국 정부는 중국 국민이 해외 미디어에 직접 접속하지 못하게 방화벽을 세웠어요. 중국 국민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접할 때도 중국에서 접속할 수 있게 허용한 '중국 버전'만 접해요. 이 점을 이용해 중국 공산당은 인터넷에 뜨는 정보와 여론의 흐름을 통제하고, 중국 국민의 반응을 감시할 수 있었어요.

현재 중국 고위 인사들은 대체로 홍콩 시위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어요. 중국은 홍콩과 인접한 선전(深�q)에 시위 진압 병력을 배치했지만, 홍콩 내부에 병력을 들여보내진 않고 있어요. 또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홍콩 정부에 여러 관리와 자문단을 보냈을 뿐, 직접 홍콩 경찰 작전을 지휘하진 않았어요. 중국 정부가 시위대 속에 첩자들을 심었다는 소문이 나돌지만 증명되진 않았어요.

중국 공산당이 이렇게 '직접 손대지 않는 전략'을 취한 덕분에, 이제 공은 홍콩 시위대에게 넘어갔어요. 홍콩 시위대는 두 가지 고민에 직면했어요. 우선 '어떻게 대규모 시위를 계속할 것이냐' 하는 점이에요. 일상이 계속되는 한 학생은 학교에, 회사원은 직장에 돌아가야 하니까요.

시위대가 자기네 주장을 '얼마나 더 급진적으로 밀어붙일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어요. 홍콩 시위대는 홍콩 국회에 해당하는 입법회 의사당과 홍콩국제공항을 점거했는데, 이건 상당히 위험 부담이 큰 전략이에요. 베이징에 시위를 진압할 명분을 줄 뿐 아니라, 홍콩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국제사회는 대체로 홍콩 시위대가 내건 대의를 지지하면서도, 중국 정부가 노련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만은 인정하고 있어요.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