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페론 부부가 시작한 포퓰리즘, 아르헨은 아직도 중독
입력 : 2019.08.21 03:00
[페론주의]
1946년 집권한 페론 대통령과 아내, 임금 20% 인상하는 등 복지 확대
나랏돈 퍼부으며 대중의 인기 끌어
지난 11일(현지 시각)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선 예비선거에서 좌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페론주의'를 내세운 후보가 득표율 47%로 마크리 현 대통령(33%)을 크게 앞서면서 아르헨티나 경제가 요동치고 있어요. 국제 신용평가 업체들이 아르헨티나 신용등급을 일제히 떨어뜨리고, 아르헨티나 주가지수도 급락했어요. 페소화 가치도 일주일 새 약 22%나 떨어졌고요. '페론주의'가 뭐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페론 대통령 부부 이름에서 따와
페론주의(Peronism)는 후안 페론(Peron·1895~1974)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에바 페론(1919~1952)의 이름에서 나온 말입니다. 페론 대통령 부부가 추진한 정책과 그 이념을 뜻하죠.
◇페론 대통령 부부 이름에서 따와
페론주의(Peronism)는 후안 페론(Peron·1895~1974) 전 대통령과 그의 아내 에바 페론(1919~1952)의 이름에서 나온 말입니다. 페론 대통령 부부가 추진한 정책과 그 이념을 뜻하죠.
- ▲ 후안 페론(맨 오른쪽)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아내 에바 페론(오른쪽에서 둘째)이 1950년 발코니에서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어요. 페론 부부는 노동자와 중산층을 상대로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 정책을 펴 인기를 얻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는 집권 후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를 강조했어요. 한 해에 많게는 20%씩 노동자 임금을 올렸지요. 1947년에는 '경제 독립'을 내세워 철도, 전화, 가스, 전기, 항공사 등을 국유화하고 외국 자본을 배제했어요.
◇현금으로 얻은 민심, 독재로 잃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현금을 살포하면서 한때 아르헨티나 빈곤율이 크게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반짝 성공의 이면엔 어두운 면이 있었어요.
모든 의사 결정은 대통령인 페론을 통해야 했어요. 그래서 정당이나 의회 정치가 발전하지 않았어요. 부정부패 추문도 끊이지 않았어요. 페론 자신도 집권 기간 동안 금괴 1200개, 비행기 1대, 요트 2대, 자동차 19대, 아파트 17채, 귀금속 1500점이라는 엄청난 재산을 모았죠. 겉으론 민중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엘리트주의자였다고 해요. 사석에서 "대중은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은 느낌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한 적도 있죠.
그는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탄탄한 산업 기반을 닦거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는 실패했어요. 결국 아르헨티나 경제는 서서히 침체에 빠집니다. 페론은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무제한 재선 허용'을 골자로 하는 개헌을 추진해 국민의 지지를 잃었어요. 페론은 1955년 군부 쿠데타로 아르헨티나에서 쫓겨납니다.
◇페론주의 부활은 '에비타' 덕분
많은 학자가 한때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국력이 기운 결정적인 원인으로 페론주의를 꼽아요. 실제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1970년대 이후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아르헨티나에서는 매번 선거철이면 '페론주의'가 고개를 들어요. "에비타 효과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에비타'는 후안 페론의 아내 에바 페론의 별명이에요. '작은 에바'라는 뜻이죠.
그녀는 후안 페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였어요. 작은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15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올라와 배우가 됐죠. 1944년 자선 행사에 참석했다가 떠오르는 정치인 후안 페론과 만나 이듬해 결혼했어요. 대통령 부인이 된 뒤 자선 사업과 여성 참정권 운동을 펼쳤죠.
그런 그녀가 1952년 33세로 요절하면서 페론은 큰 타격을 받았어요. 결국 아내가 죽은 지 3년 만에 권력을 잃었죠.
[여전히 성모로 숭앙받는 에비타]
아르헨티나 언론인 토마스 마르티네스는 1996년 "라틴아메리카에선 '정치적 신화'가 다른 지역보다 유독 오래간다"며 에바 페론의 문화적 영향력이 쿠바혁명을 일으킨 체 게바라에 버금간다고 평가했어요.
쿠바혁명은 당초의 이상과 달리 빈곤과 독재를 불렀어요. 그런데도 쿠바혁명을 주도한 체 게바라는 지금껏 청춘과 정의의 상징으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경제는 페론주의 때문에 엉망이 됐건만, 후안 페론 대통령의 아내인 에바 페론은 여전히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징으로 통하고 있어요. 각각 '예수'(체 게바라)와 '성모 마리아'(에바 페론)의 이미지로 숭앙받고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