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달콤한 쇼팽, 환상적 드뷔시… 당신의 밤에 어울릴 녹턴은?

입력 : 2019.08.17 03:00

[녹턴]
밤의 정서 담겨 야상곡으로도 불려요… 아일랜드 작곡가 존 필드가 창시했죠
쇼팽도 필드 영향받아 21곡 작곡

8월의 절반이 지나갔지만, 아직 많이 덥습니다. 열대야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분도 많으실 텐데요, 잠이 안 올 때 듣기 좋은 음악을 추천하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이 바로 녹턴(Nocturne)입니다. 한자어로는 야상곡(夜想曲)이라고 부르는 이 작품들은 그야말로 주위가 고요한 밤에 듣기 딱 좋은 곡들입니다.

녹턴의 시작을 얘기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아일랜드 출신의 작곡가 존 필드(1782~1837)입니다. 녹턴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이죠. 필드는 런던에서 명피아니스트 무치오 클레멘티에게 배운 후 유럽 무대에서 데뷔해 연주자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1803년부터 러시아를 포함한 전 유럽을 여행하며 폭넓게 활동했어요. 그는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 외에도 18곡의 녹턴을 남겼는데요, 밤이 주는 고독함과 그 서정성에 끌렸던 필드는 부드럽고 순수한 느낌이 드는 오른손 멜로디와 단순하면서도 잔잔한 흐름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왼손의 반주가 어우러지는 피아노 소품을 만들었습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필드는 특히 피아노에서 밟으면 음이 길게 울리는 오른쪽 페달(댐퍼 페달)을 능숙하게 사용했는데요, 공명이 풍부한 그의 녹턴에서 그의 페달 기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녹턴' 연작 중 '검정과 금빛의 녹턴'(1875).
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녹턴' 연작 중 '검정과 금빛의 녹턴'(1875). 불꽃놀이가 영국 런던 밤하늘을 수놓은 장면입니다. 쇼팽의 열렬한 팬이었던 휘슬러의 후원자 덕분에 연작 제목은 '녹턴'이 됐습니다. 드뷔시는 휘슬러의 녹턴 연작을 보고 영감을 얻어 자신의 녹턴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위키피디아·디트로이트미술관 소장
녹턴 하면 떠오르는 '피아노의 시인'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은 필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필드가 만든 서정적인 분위기에 좀 더 다양한 색채감을 더해 규모를 늘리고, 변화무쌍한 악상으로 듣는 이들에게 더 큰 감동을 줬죠. 섬세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악상을 담은 멜로디에는 쇼팽 특유의 반음계적인 진행이 많이 나타나고, 왼손 반주의 움직임은 그 폭을 좀 더 넓혀서 깊은 맛을 더했죠. 쇼팽은 일생에 걸쳐 모두 21곡의 녹턴을 작곡했습니다.

낭만주의 시대에 살았지만 고전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형식을 엄격히 지켰던 쇼팽은 녹턴에서도 3부 구성을 고수했어요. 그 결과 로맨틱한 감성이 짙게 배는 동시에 깔끔한 마무리를 보이는 걸작들이 탄생했죠.

쇼팽의 녹턴은 한 곡 한 곡 모두 특징이 있어요. TV 광고 음악 등에 단골로 쓰이는 작품 9의 2(Op 9, No 2)는 부드러운 장식음과 티 없이 맑은 악상이 인상적이에요. 작품 48의 1(Op 48, No 1)은 깊은 슬픔을 담은 첫 부분과 관현악곡을 듣는 것처럼 커다란 규모를 지닌 악상이 등장하는 중간부가 대조를 이루는 대곡이죠.

또 작품 27의 2(Op 27, No 2)는 사랑에 설레 잠 못 이루는 작곡가의 마음이 달콤하게 녹아있는 듯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라 피아니스트들의 앙코르곡으로 인기가 많아요.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제 음악으로 유명해진 유작(遺作) 녹턴 c 샤프 단조는 원곡인 피아노 외에 바이올린 등 다른 악기를 위한 편곡으로도 즐겨 연주됩니다.

쇼팽의 아름다운 녹턴들에 영향받은 후배 작곡가들이 무척 많아요. 그중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1845~1924)의 녹턴은 쇼팽의 부드러운 감성과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결합한 이상적인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가 작곡한 녹턴은 모두 13곡이 전해옵니다. 1883년부터 1922년까지 약 40년의 기간에 걸쳐 조금씩 쓰인 이 작품들은 시기마다 포레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쇼팽보다 규모가 큰 포레의 녹턴은 변화가 심한 화성 진행과 그 안에 나타나는 오묘한 느낌의 음색 변화, 잘 다듬어진 피아노의 기교가 세련되게 나타나요. 처음 들어서 친하긴 어렵지만 들을수록 향기로운 여운을 풍깁니다.

보통 녹턴 하면 피아노곡을 연상하지만,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작품도 있어요. 클로드 드뷔시(1862~1918)가 1900년 발표한 관현악곡 '녹턴'은 모두 세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 악장에서는 여성 합창도 등장하는 대규모 구성입니다. 각 악장에는 '구름' '축제' '바다의 요정'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요. 드뷔시는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는데요, '구름'은 태양 속으로 사라져 가는 구름의 느릿하고 쓸쓸한 모습, '축제'는 눈이 부신 빛 속에 나타나는 축제의 춤, '바다의 요정'은 달빛에 어린 은빛 파도 사이로 들리는 신비로운 노래라고 표현했습니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녹턴이 조용한 명상을 만들어낸다면, 드뷔시의 관현악 녹턴은 듣는 이들에게 꿈과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녹턴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어요. 뉴에이지 작곡가로 분류되는 캐나다 출신의 앙드레 가뇽, 우리나라의 이루마 등은 작품 활동을 통해 피아노를 처음 배웠을 때 접한 쇼팽의 녹턴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죠. 깊은 여름밤, 매미와 귀뚜라미의 노랫소리와 잘 어울리는 나만의 녹턴을 찾아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쇼팽 녹턴… 지금도 모범 답안으로 통하죠]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수많은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녹턴을 연주했어요. 그중에서도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사진)의 녹턴 음반이 예나 지금이나 큰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쇼팽과 같은 폴란드 출신이어서였을까요. 루빈스타인은 다른 작곡가의 레퍼토리도 풍부했지만, 쇼팽에 있어서는 비교가 불가능한 최고 연주자로 꼽혔습니다. 지금까지도 그의 쇼팽 해석은 일종의 모범 답안이자 기준으로 통합니다. 그의 연주는 당당하고 외향적인 동시에 낙천적이고 밝은 서정성을 갖고 있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루빈스타인은 쇼팽 탄생 150주년이 되던 1960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후배 연주자들에게 이런 조언을 했어요. "쇼팽은 매우 진지하고 엄격한 원칙하에 작품을 만들었다. 연주자들은 쇼팽이 달빛에 펜을 적셔 녹턴을 작곡했다는 환상에 빠져 불필요하게 과장해 연주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자의적인 작품 해석을 경계하는 명언입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