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빛의 힘으로 가는 '우주 돛단배'… 더 멀리, 더 빠르게

입력 : 2019.08.15 03:05

솔라 세일

지난달 23일 우주 돛단배가 720㎞ 높이의 지구 궤도 위에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미국 행성협회(The Planetary Society)가 쏘아 올린 라이트세일 2호입니다. 우주 공간은 진공 상태라 바람도 안 부는데 왜 돛을 단 우주선이 나온 걸까요. 놀랍게도, 바람이 아닌 빛의 힘을 받아서랍니다.

◇빛 입자가 가진 운동량 활용

여름철 땡볕도 피부를 달굴 뿐 우리 몸을 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주선은 햇빛을 받아 앞으로 나아갈까요. 이를 위해서는 빛의 특징을 알아야 합니다.

뉴턴부터 아인슈타인까지 물리학자들은 빛의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 연구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빛은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죠.

우주 돛단배는 빛 입자(photon)의 성질을 활용합니다. 태양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빛 입자를 무한정 보내옵니다. 빛 입자는 우주선에 장착된 돛을 만나면 반사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운동에너지를 돛에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바람도 파도도 없는 잔잔한 호수 위에 돛단배를 띄웁니다. 그리고 육지에서 탁구공을 무수히 쏘아 돛단배 돛을 맞힙니다. 탁구공 한두 개라면 배는 그 자리에 있겠지만 아주 많은 탁구공이 돛을 맞히면 돛이 부풀고 앞으로 나아가겠죠. 빛 입자가 이런 탁구공 역할을 하는 겁니다.

물론 빛 입자 하나하나가 전달하는 에너지는 아주 미미합니다. 사람이 볕을 쬐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처럼요. 그렇지만 진공상태로 저항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이 빛의 운동에너지를 충분히 모으면 우주선을 움직일 수 있어요. 태양이 보내오는 광자의 힘을 받는 돛이라 '솔라 세일(Solar sail·태양 돛)'이라고도 부릅니다.

◇태양빛만으로 고도 상승

행성협회가 쏘아 올린 라이트세일 2호는 이 같은 원리가 실제로 가능한지 실증하는 기구입니다. 연구진은 무게 5㎏에 식빵만 한 크기로 접힌 초소형 위성을 로켓에 실어 지난 6월 우주로 쐈어요. 이 위성은 지구 궤도를 돌다가 지난달 얇은 합금으로 된 금속 돛을 펼쳤습니다. 돛 크기는 약 32㎡, 10평 정도로 권투 링과 비슷합니다. 이 돛으로 광자의 힘을 받기 시작했죠. 태양광에 있는 광자를 통해 받아내는 힘만으로 약 2주 동안 고도가 3200m 올라갔어요.

솔라 세일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지금이야 초기 단계지만 과학자들은 기대가 큽니다. 돛의 크기를 지금보다 더 키우면 빛의 속도(약 초속 30만㎞)의 5분의 1에 육박하는 초속 6만㎞의 속도로 우주를 가로지를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거든요. 태양광에 의한 가속은 계속되고, 마찰이 없는 진공상태 우주를 비행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계산대로라면 지금 로켓 기술로는 3만년이 걸리는 '알파 센타우리'까지 걸리는 시간을 약 20년으로 줄여줄 수 있습니다. 엄청나죠.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태양광이 보내오는 빛 입자가 줄어들면서 힘이 빠질 수 있어요. 점점 바람이 약해진다고 할 수 있지요. 연구진은 지구에서 레이저를 쏘아 돛을 미는 방법도 구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료 없이 항해하는 우주선

인간이 달에 다녀온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우주선을 움직이는 로켓 추진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기계공학과 엔진 기술은 크게 발전했지만, 1969년 처음 달에 간 아폴로 11호나 우리나라 나로호나 모두 석유에서 유래한 연료에 산화제를 섞어서 쓰는 건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장거리 우주 비행을 하려면 새로운 에너지원과 비행 기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거예요. 무거운 액체연료를 싣고 우주선이 다닐 수 있는 거리는 광대한 우주 크기를 생각하면 너무 제한적이거든요. 솔라 세일은 연료를 싣지 않고 우주를 항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다 나온 발명입니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우주여행이 한 걸음 더 성큼 다가올 것으로 보입니다.

[우주돛단배는 누구 아이디어?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

'솔라 세일' 아이디어를 처음 내놓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과학 분야 스테디셀러 '코스모스'로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는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입니다.

세이건은 1976년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해서 태양광을 이용해서 항해하는 우주선 모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우주 돛단배는 기존 우주선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또 우리 태양계부터 다른 태양계까지 태양광 힘만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죠.

칼 세이건은 외계 생명을 찾는 것을 목표로 1980년 행성협회를 설립합니다. 라이트세일 2호는 이 협회가 40년 가까이 노력해 만들어낸 결과물이죠. 행성협회는 2015년에 라이트세일 1호를 쏘아 올리기도 했습니다. 1호기는 우주에서 돛을 펴는 것까지만 실험했죠. 2호기가 본격적으로 빛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궤도를 돌기 시작했으니, 5호기쯤 되면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태양계 '알파 센타우리'에 가는 것도 꿈은 아닐 겁니다.



주일우·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