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경일의 심리학 한 토막] 잠 부족하면 뇌·신경 연결 약해져 어이없는 실수 한대요

입력 : 2019.08.14 03:05

잠과 실수

몇 해 전 제가 학회에서 만난 유럽 심리학자 한 사람이 이런 농담을 했어요. "당신네 한국 사람들은 우리 유럽에 놀러 오면 말이죠, 복장만 관광객이고 하는 행동은 완전히 일하러 온 사람 같아요. 놀러 온 사람들이 도대체 왜 새벽 4시부터 죄다 일어나서 돌아다니는 거죠?"

예리한 지적입니다. 열심히 살고 부지런히 일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근면 성실이 '선(善)'입니다. 그 반대인 게으름은 악(惡)이죠. 오죽하면 악당을 불한당(不汗黨)이라고 하겠습니까. '땀 안 흘리고(不汗) 먹고사는 패거리(黨)'라는 뜻이죠.

물론 근면과 성실은 참 좋은 가치입니다. 그렇다 보니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니 문제죠. 부지런한 것과 가장 거리가 먼 상태가 잠을 자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죽하면 한국에서는 남을 이렇게 나무랍니다. "너 지금 잠이 오냐?" 수십 년 동안 고3 수험생에게 농반진반으로 하는 말도 '사당오락(四當五落)'입니다. 하루에 4시간 자며 공부하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속설입니다.
잠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거나 평소 억눌러 왔던 나쁜 습관이 무심코 나올 가능성이 높아요.
잠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거나 평소 억눌러 왔던 나쁜 습관이 무심코 나올 가능성이 높아요.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지금 잠이 오냐'고 말할까요. 일 처리를 바보같이 하거나 시험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문제를 틀린 사람을 질타할 때 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요. 질문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이불킥'을 할 실수를 많이 할까요?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그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합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자율신경계와 전두엽의 연결성이 떨어져 부적절한 행동이 제어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 보니 제대로 못 잔 사람들은 나쁜 습관을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는 상황에서 코를 후빌 수도 있고, 취업이 걸린 면접 장소에서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꼬거나 턱을 괴게 됩니다.

시험을 보다가 답안을 잘 작성해 놓고는 시험 끝나기 직전에 틀린 답으로 고쳐서 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래놓고 나중에 채점할 때 망연자실해지죠. 이것도 잠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잠을 줄이며 공부했고, 남아 있는 집중력을 모두 발휘해 시험문제를 풀었는데 시험 막바지로 갈수록 자제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또 잠을 자면서 뇌에 기억이 통합·저장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면 판단력, 자제력, 창의력이 평소만 못해진다는 연구도 많고요.

2017년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 평균 수면시간(7시간 41분)이 조사 대상이었던 18개 국가 중 가장 짧았습니다. OECD 평균은 8시간 22분이었죠. 한국 직장인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6분에 그쳤고요. 중요한 회의나 발표 혹은 시험 전날 충분히 자는 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