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달을 전구처럼 갈아끼운다면? 그의 상상은 사진이 된다

입력 : 2019.08.10 03:03

에릭 요한슨 사진展 'Impossible is Possible'

지난 7월 20일은 미국의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가 달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딘 지 50주년 되는 날이었어요. 1969년 그날 우주복을 입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서 있는 사진이 전 세계 주요 신문의 첫 페이지에 커다랗게 실렸지요.

이렇게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나서야 사람들은 달에 대한 수많은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달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없다는 것도, 외계인 기지가 없다는 것도 사진을 보고서야 믿게 됐죠. 심지어 이 사진조차 조작됐다며 못 믿겠다는 사람들도 나왔지만요. 달이 지구로부터 38만4400㎞ 떨어진 천체라는 것을 책에서 배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사진으로 보기 전에는 달이 도무지 현실적인 공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나 봅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 저 끝까지 배를 타고 가면 황금이 쏟아지는 나라가 있을 거라고 상상했어요.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막연히 상상만 하던 모든 것이 분명해졌어요. 이후 사진은 사람들에게 '봐라, 네가 상상한 것이 실제로는 이런 모습이다'라고 증명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다만 사진이 등장하면서 아쉽게도 흥미진진한 상상들은 자리를 잃었습니다. 재기 발랄한 상상력은 사라지고 덩그러니 현실만 남은 세상은 이제 지루한 곳이 되었죠. 그래서 몇몇 예술가들이 사진은 현실을 전달하는 도구라는 상식을 깨트리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수단으로 쓰기 시작합니다.

스웨덴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34)은 사진으로도 무한한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는 마치 마술사 같아요. 도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풍경이 그의 사진 속에서는 가능한 듯 느껴지거든요. 예술의 전당에서는 오는 9월 15일까지, 한국과 스웨덴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하여 에릭 요한슨의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어요. 사람의 상상력이 사실적인 카메라와 만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 직접 볼 수 있답니다.
①‘보름달 서비스(Full Moon Service)’, 2017.
①‘보름달 서비스(Full Moon Service)’, 2017.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Erik Johansson
작품1을 보세요. 하늘에 걸린 달을 마치 가로등 전구를 갈아 끼우듯 새것으로 교체하는 중이에요. 그러고 보니, 달이 흐릿한 밤도 꽤 많았지만, 유난히 크고 밝게 빛나던 밤도 있었어요. 아마 달 배달원이 잘 충전시킨 빛 좋은 보름달로 바꿔주고 간 덕분인가 봐요.
②‘적운과 천둥(Cumulus & Thunder)’, 2017.
②‘적운과 천둥(Cumulus & Thunder)’, 2017.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Erik Johansson
달이 어떤 식으로 하늘에 걸리는지 비밀을 알았으니, 이번엔 구름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살펴볼까요? 작품2는 동물 미용사가 양털을 보기 좋게 가위질해 수평선 저 끝으로 올려 보내는 장면이에요. 화면 오른쪽에는 흑염소가 기다리고 있는데, 이 흑염소 털은 곧 먹구름으로 변하겠군요.

요한슨은 대학에서 미술이 아닌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어요. 그는 열다섯 살에 처음 카메라를 선물 받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고 합니다. 사진은 찍는 순간 모든 것이 다 결정되어 버리니까요. 그는 '만약 내가 찍은 사진들을 짜깁기하여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만약'이라는 단어가 지금 그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죠. 카메라는 그의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내주는 기계였지요.
③‘믿고 내딛기(Leap of Faith)’, 2018.
③‘믿고 내딛기(Leap of Faith)’, 2018.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Erik Johansson
작품3을 보면 한 사람이 낭떠러지 위에서 허공으로 한 발을 내딛고 있어요. 그는 달랑 풍선 한 개를 손에 들고 있을 뿐입니다.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이 풍선 한 개를 믿고 자기 몸을 몽땅 맡긴다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점프대 위에 작은 글씨로 경고의 글이 쓰여 있어요. "풍선은 1인당 1개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날아보세요.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디 있게 될까요?" 아마도 계속 같은 자리에서 서성거릴 뿐이겠지요.

이 작품 제목은 '믿고 내딛기'입니다. 어쩌면 자신의 경험이 담겨 있는지도 몰라요. 컴퓨터 공학자로 잘 가던 길을 그만두고 대신 꿈을 좇아 잘 모르는 사진작가의 세계를 택하는 순간, 그는 아마 허공에 발을 내미는 기분이 들었을 거예요.
④‘골목 아래(Under the Corner)’, 2017.
④‘골목 아래(Under the Corner)’, 2017.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Erik Johansson
작품4를 볼까요?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건물들이 보여요. 한 여행자가 그림을 펼쳐보며 왠지 이상한 듯 멈춰 서 있는데, 그럴 수밖에요. 건물의 앞면이 옆면도 되는가 하면, 평평하던 길이 돌연 다른 건물의 밑부분으로 바뀌어 있기도 하거든요. 요한슨이 여러 개의 사진을 아주 묘하게 붙여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⑤‘절벽에 지지하는 집(Self-Supporting)’, 2017.
⑤‘절벽에 지지하는 집(Self-Supporting)’, 2017.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Erik Johansson

작품5는 어떤가요? 바위 절벽을 찍은 사진과 건물 사진들을 아치 모양으로 연결했어요. 공중에 아슬아슬하게 떠있는 집들이 신기해 보이네요. 실제로 있는 듯하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풍경이랍니다. 사진으로 찍었기 때문에, 거짓이지만 더욱 진짜 같은 느낌이 들죠.

[에릭 요한슨의 넘치는 상상력… 초현실주의 화가들 영향 받았죠]

슨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면을 먼저 사진으로 찍고 나서 일부를 없애거나 지우고 다른 사진을 덧대는 작업을 합니다. 그걸 바탕으로 추가 편집을 하고요. 단순히 여러 이미지를 합성하는 작품과는 다르답니다. 그는 "카메라는 나의 도구며, 컴퓨터는 나의 캔버스다"라고 작업 철학을 설명합니다.

이번 전시는 '사진전'입니다. 그렇지만 요한슨은 사진가보다는 화가들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고 해요. 그는 인터뷰에서 "나에게 큰 영감을 준 화가는 20세기 초현실주의자인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그리고 모리츠 에셔"라고 말했어요.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