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영원한 생명 찾아나선 4500년전 半神半人의 모험

입력 : 2019.07.31 03:00

[길가메시 서사시]
고대 메소포타미아 영웅 이야기… 역사 속 우루크 왕 길가메시가 주인공
친구가 세상 떠나자 죽음의 공포 느껴 영생 찾지만 결국 죽음 받아들여

영화배우 마동석씨가 2020년 개봉 예정인 마블 영화 '이터널스'에서 '길가메시' 역을 맡아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됐어요. 이 캐릭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대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어요.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이라고 평가되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과연 어떤 작품일까요?

일리아스보다 1800년 먼저 나온 서사시

서양 서사시 중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에 나왔어요. '길가메시 서사시'는 그보다 한참 앞선 약 4500년 전의 작품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이자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꼽히죠. 현대 이라크 지역에 뿌리내렸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산이에요.

길가메시(왼쪽)가 신들이 내려 보낸 재앙이었던 '하늘의 황소'를 제압하는 모습을 담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테라코타 조각입니다.
길가메시(왼쪽)가 신들이 내려 보낸 재앙이었던 '하늘의 황소'를 제압하는 모습을 담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테라코타 조각입니다.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있던 도시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인간 아버지와 여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이에요. 오만하고 난폭한 왕이었던 그는 인간의 손길 없이 야생에서 자란 사나이 엔키두를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두 영웅은 입으로 불을 내뿜는 숲속의 괴물 훔바바를 물리치며 함께 성장해나가죠.

여신 이슈타르가 길가메시에게 청혼하면서 비극이 벌어집니다. 길가메시는 청혼을 거부하고 이슈타르를 모욕합니다. 신들은 거대한 황소를 보내 길가메시를 응징하려 하죠.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황소를 물리치지만, 그 과정에서 신들의 분노를 사 엔키두가 죽고 맙니다.

충격을 받은 길가메시는 불사의 비결을 찾겠다고 결심합니다. 불사가 불가능하다면 늙지 않는 법이라도 찾겠다며 바다에서 불로초를 캐지만, 길가메시가 잠든 사이 뱀이 불로초를 먹어버리고 말지요. 마지막에 길가메시는 젊은 여인 시두리를 만납니다. 길가메시에게 그녀는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현실의 평범한 행복을 즐기라'고 충고하죠. 길가메시는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이기로 결심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영웅

우루크
독일 시인 릴케는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위대한 서사시'라고 말했어요.

처음에 길가메시는 자신을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지만 엔키두가 죽은 뒤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운명임을 깨닫고 공포에 빠지죠. 그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역설적으로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필멸의 존재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세보다 현실의 삶을 더 중시했던 수메르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부분이에요.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믿어온 종교와 신화에 큰 영향을 줬기에 더 중요합니다. 수많은 이야기의 '원형'이 이 서사시 안에 담겨 있어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도 길가메시 서사시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특히 오디세이아는 세상 곳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온다는 점, 주인공의 핵심 조언자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길가메시 서사시와 닮아있어요.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의 모험 이야기에도 영향을 줬을 거란 시각이 있어요. 길가메시가 엔키두와 함께 모험을 떠나 황소를 격퇴하고 사자를 잡는 장면 등이 헤라클레스의 열두 고난과 겹친다는 겁니다.

수메르 역사와 신화를 연구해온 저술가 김산해씨는 '최초의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라는 책에서 "오디세이아뿐만 아니라 게르만 민족 서사시 '베오울프',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모두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출발했다"고 평가했어요.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등장]


길가메시 서사시를 기록한 점토판 12개는 영국 고고학자였던 호르무즈드 라삼이 1853년 고대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네베'에 있는 유적에서 발굴했어요. 다만 큰 화제는 되지 않았어요. 쐐기문자 기록이라 정확한 내용도 알려지지 않았죠.

1872년 영국 고고학자 조지 스미스가 서사시의 11번째 점토판을 해석해 영어로 발표하면서 서양에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바로 '대홍수'가 닥쳤을 때 '우트나피시팀'이 방주를 건설해 살아남아 인류의 조상이 됐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성경 속 '노아의 방주'와 비슷해 크게 주목받았어요.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