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트럼프 닮은꼴' 영국 새 총리… 美·英 관계만 좋아질 듯

입력 : 2019.07.26 03:09

보리스 존슨

보리스 존슨
보리스 존슨〈사진〉 전 영국 외무장관이 새 영국 총리로 확정됐어요. 존슨 새 총리는 윈스턴 처칠 총리 이래 가장 엄혹한 도전에 직면한 총리예요. '브렉시트'와 관련해 영국이 어떤 방식으로 유럽연합을 탈퇴할지 결정해야 할 뿐 아니라, 이란을 둘러싸고 불거진 예상 외의 외교적·군사적 위기에도 대응해야 해요.

지난주 이란군이 호르무즈해협에서 영국 국기를 단 유조선을 억류했어요.

이란은 이란군 지휘관들이 유조선 억류 과정을 헬기에서 지휘하고, 쾌속선이 수송선 주위를 도는 동영상을 촬영해 공개했어요. 이란의 의도는 명확합니다. 영국에 망신을 주는 거죠. 영국에 보복하는 의미도 있었어요. 보름 전에는 영국군이 지브롤터해협에서 이란 유조선을 억류했거든요.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이란이 영국 유조선을 억류한 데 대해 '정부 차원의 해적 행위'라고 비판했어요. 실제로 이란이 댄 명분은 의심스러워요. 하지만 영국이 이란 유조선을 억류한 것 역시 여러 가지 의문을 던집니다.

영국은 표면적으로 이란 유조선이 유럽연합의 국제 제재를 어기고 시리아로 원유를 실어나르고 있다는 명분을 댔어요. 하지만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영국이 이란과 대립 중인 미국의 부탁을 받고 이란 유조선을 억류했다고 보고 있어요. 영국과 미국은 확실히 가까운 동맹이지만 이번 건에 있어서는 영국의 판단이 별로 똑똑해 보이지 않아요. 영국은 유럽연합 제재에 따라 이란 유조선을 억류했다고 했지만, 정작 유럽연합은 그런 영국의 움직임에 뜨뜻미지근한 지지를 보냈을 뿐이거든요.
이란 혁명수비대 스피드보트가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총으로 겨냥하고 접근하고 있어요. 이란은 이 유조선을 지난 19일 호르무즈해협에서 나포했어요. 영국이 4일 지브롤터해협에서 시리아에 원유를 밀반입한 혐의로 이란 유조선을 나포하자 맞대응한 것이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와 함께 유조선 나포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이란 혁명수비대 스피드보트가 영국 유조선 ‘스테나 임페로’호를 총으로 겨냥하고 접근하고 있어요. 이란은 이 유조선을 지난 19일 호르무즈해협에서 나포했어요. 영국이 4일 지브롤터해협에서 시리아에 원유를 밀반입한 혐의로 이란 유조선을 나포하자 맞대응한 것이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와 함께 유조선 나포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AP 연합뉴스
좀 더 넓게 보면, 영국이 지금 처한 상황은 앞날은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 움직여온 결과인지 몰라요.

유럽연합 측과 탈퇴 조건을 합의하지 못한 채 떠나는 일명 '노딜(no deal) 브렉시트'는 영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존슨 새 총리로선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하는 게 자신이 속한 보수당의 지지를 확보하는 길이에요. 브렉시트 때문에 영국 정치가 막다른 길에 갇히게 되지요.

이란 문제와 관련해 군사적 해결은 불가능해요. 영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특수부대를 가졌다고 자랑하지만, 지금의 영국 해군은 한때 무적이라 불리던 과거 영국 해군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이란은 수퍼파워는 아니지만, 군비를 잘 갖춘 국가이고 자기네 텃밭에서 작전을 펼친다는 강점을 갖고 있어요. 영국은 걸프만에서 그런 이란을 제압할 충분한 힘이 없어요. 이번 사태가 영국 외교력의 하락을 보여주는 쪽으로 끝맺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죠.

영국이 지브롤터해협에서 이란 선박을 억류한 뒤 상식적인 대응만 했더라도 이란이 이런 식으로 보복하는 건 불가능했을지 몰라요. 걸프만을 지나는 영국 배들은 무장을 하라는 권고를 받지 못했어요. 걸프만에 있던 영국 군함 두 척이 영국 배들을 모아서 호위하지도 않았고요. 이건 영국 정부가 앞날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예요.
영국, 이란의 유조선 억류 지역 지도

사실 영국 정부의 이런 행보는 최근 한국 정부의 행보와도 닮은 점이 있어요. 한국은 2015년 일본과 맺은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폐기하고, '청구권 문제는 해결됐다'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의 핵심 조항도 건드렸어요. 일이 이렇게 되면, 옳고 그름을 떠나 일본도 뭔가 대응을 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한국 정부가 일본의 반격에 치밀하게 대비한 것 같지 않아요. 자칫 한국 최대 산업과 한국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구도였는데도요. 한·일 관계는 양국이 국교를 맺은 이래 최악의 상태가 됐지만 아직 한국 정부는 워싱턴의 지지를 끌어내거나, 다른 주요 동맹국을 한국 편에 세우지 못했어요.

앞으로 양국에 새로운 정치 지도자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양국 관계에 별다른 진전이 없을 위험이 커요. 일본은 2021년 아베 신조 총리의 임기가 끝나고 한국은 2022년 다음 정부가 들어서지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면, 이란 사태는 존슨 새 총리 때문에 불거졌다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브렉시트 문제는 그렇지 않죠. 존슨 새 총리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자고 강경하게 주장해온 인물이거든요.

영국 입장에서 존슨 새 총리가 집권해서 생긴 이점이 하나 있다면 존슨 새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인식이 일치한다는 점이에요. 미·영 관계가 더욱 강화될 거예요.

그렇다 하더라도, 존슨 새 총리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가 이란 사태나 브렉시트 같은 험로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낙관하기 어려워요. 국제정치에서 영국의 힘이 줄어들 거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