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 이야기] 고전하던 애플을 정상에 세운 디자이너, 아이맥·아이폰 모두 그의 작품

입력 : 2019.07.23 03:00

조너선 아이브

지난달 애플 시가총액이 순식간에 10조원이 증발하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지난 20여년간 애플 주력 제품 디자인을 총괄해온 조너선 아이브(Ive·52) 최고디자인책임자가 올해 말 퇴사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거든요.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1955~2011)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아이브는 지금의 애플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입니다.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주요 상품 디자인에 모두 관여했어요.

애플이 2014년 내놓은 '애플 워치'는 1년 만에 60억달러어치가 팔렸습니다.
애플이 2014년 내놓은 '애플 워치'는 1년 만에 60억달러어치가 팔렸습니다. 롤렉스 한 해 매출보다 30% 이상 높은 액수였죠. 이 역시 아이브 작품이죠. /애플
아이브는 1992년 애플에 입사했어요. 디자인을 중시하지 않는 회사 분위기에 불만을 품고 퇴사하려고 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1997년 다시 애플 CEO로 돌아오면서 의기투합했죠. 잡스는 아이브를 전폭적으로 지지했어요. 엔지니어가 기기를 설계하면 디자이너가 그에 맞춰 외형을 구상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그걸 거꾸로 뒤집어 디자이너가 제품 설계를 주도하도록 했어요. '엔지니어 퍼스트'에서 '디자이너 퍼스트'로 돌아선 거예요.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애플이 이렇게 성공할 거라고 내다본 이는 별로 없었어요. 컴퓨터 시장의 승자는 애플이 아니라 IBM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했지요. IBM에 밀려 고전하던 애플은 1998년 '아이맥 G3'을 내놓으며 반격을 시작합니다.

당시 컴퓨터는 칙칙한 색과 지루한 모양 일색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맥 G3'는 둥근 반투명 청색 플라스틱 케이스에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일체형 컴퓨터였죠. 매력적인 디자인에 책상 위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았어요. '아이맥 G3' 덕분에 1997년 10억달러 적자였던 애플은 1998년 4억달러의 흑자를 냅니다.

조너선 아이브의 초기 대표작 '아이맥 G3'.
조너선 아이브의 초기 대표작 '아이맥 G3'. 모니터와 본체가 합쳐진 일체형 컴퓨터입니다. /애플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와 환상의 콤비로 혁신적이면서도 탁월한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쏟아냅니다. 기존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을 평정한 '아이팟'(2001년), 첫 터치 스크린 스마트폰인 아이폰(2007년)이 대표적이죠. 서류 봉투에 들어갈 만큼 얇은 크기로 노트북 시장 트렌드를 바꿔놓은 '맥북 에어'(2008년)도 빼놓을 수 없어요.

아이브는 미니멀리즘을 추구했어요.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최대한 간결하게 디자인하는 거죠. 다른 회사는 하나의 기능이라도 더 넣고 싶어 할 때 아이브는 기능을 빼서라도 더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했어요. 아이브에게 큰 영감을 준 사람이 20세기 후반 독일 브라운사에서 활약한 디터 람스(Rams)랍니다. 람스의 디자인은 지금 봐도 세련되고 단순해요.

잡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 '디자인만큼은 아이브에게 맡겨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아이브를 신뢰했어요. 이제 아이브는 '러브프롬(LoveFrom)'이라는 독립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기로 했어요. 첫 고객은 당연히 애플입니다. 그가 또 어떤 놀라운 물건을 탄생시킬까요?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