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만만하게 접하는 리코더, 바로크 시대엔 '협주곡 주인공'

입력 : 2019.07.20 03:03

리코더

7월도 절반 이상이 지나갔네요. 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여름방학을 맞이합니다. 음악은 다른 과목과 달리 실기 시험이 있어 교습을 받기도 하죠. 예전부터 음악 실기와 함께해온 대표적인 악기가 하나 있어요. 바로 '리코더(recorder)'입니다. 동네 문구점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어 만만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리코더도 클래식 음악에서 중요한 악기랍니다.

서양 관악기 대부분이 그렇듯 리코더도 처음 만들어진 시점은 불분명해요. 고대 그리스·로마 시절에 쓰이던, 구멍이 서너 개 뚫린 피리를 기원으로 보는데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면서 지금처럼 구멍이 8개 있는 리코더가 널리 퍼집니다. 바로크 시대에 리코더를 위한 작품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졌어요.

사실 리코더는 영어 이름이고,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요. 독일에서는 '블록플뢰테(Blockflöte)', 프랑스에서는 '플뤼트 아 벡(flute à bec)', 이탈리아에서는 '플라우토 돌체(Flauto dolce)'라고 부릅니다. 세 나라 모두 '플루트'를 뜻하는 낱말이 리코더를 부르는 이름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까지 플루트는 리드(reed·목관악기의 주둥이 부분에 끼워 떨림으로 소리를 내는 진동판)가 없는 관악기를 뭉뚱그려 부르는 용어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쉽게 말해 리코더는 '세로로 부는 플루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 이름 '블록플뢰테'는 '마개가 있는 플루트'라는 뜻으로, 입이 닿는 부분을 작은 마개 모양으로 만들어 바람이 마개와 몸통 사이의 작은 공간을 빠져나가며 소리를 내는 걸 가리킵니다. 프랑스어 이름의 '벡(bec)'은 새의 부리라는 뜻으로 마개 부분의 모양을 묘사한 것이고, 이탈리아어 이름의 '돌체(dolce)'는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의미로 악기의 음색을 나타냅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리코더를 들고 있는 사람을 그린 17세기 이탈리아 유화. 리코더는 클래식 음악에서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로 작품에 윤기를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리코더를 들고 있는 사람을 그린 17세기 이탈리아 유화. 리코더는 클래식 음악에서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로 작품에 윤기를 더하는 역할을 합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수업 시간에 쓰는 리코더는 한 가지죠. 그렇지만 실제로는 음역에 따라 소프라니노,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리코더 등 8가지가 있어요. 고음일수록 악기가 짧고, 저음으로 내려가면서 길고 굵은 모양이죠. 학생들이 가장 많이 연주하는 악기는 소프라노 리코더(길이 약 32㎝)이고, 프로 연주자들이 즐겨 선택하는 악기는 알토 리코더(약 45㎝)입니다. 플라스틱 리코더가 익숙하시겠지만, 전문가용 악기는 회양목, 흑단, 단풍나무 등으로 만든답니다.

바로크 시대 대표적인 리코더 작품 중 바이올린, 기타, 첼로 등 다양한 악기를 위한 협주곡을 500곡 이상 만든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의 작품을 먼저 소개합니다. 어느 악기든 그의 협주곡은 독주자가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리코더를 위한 협주곡도 비슷해요. 알토 리코더를 위한 협주곡 c단조, F장조, 소프라니노 리코더를 위한 협주곡 C장조 등이 알려져 있어요. '홍방울새'라고 불리는 플루트 협주곡 D장조도 리코더로 많이 연주하기도 하고요.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1681~1767)의 리코더 작품들도 매우 훌륭합니다. 텔레만은 세속음악과 종교음악을 가리지 않고 약 3000여 곡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어요. 서정적인 멜로디와 쉬운 화성으로 금방 친숙해질 수 있는 게 특징입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리코더의 선율이 매력적인 12개의 무반주 환상곡, 리코더와 비올라 다 감바를 위한 협주곡 a단조 등이 유명합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도 리코더 음악에 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칸타타와 수난곡 등의 오케스트라에 리코더를 넣어서 부드러운 음색을 뽐내게 했는데요, 무엇보다 걸작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서 리코더에 주인공을 맡긴 것이 하이라이트입니다. 모두 여섯 곡으로 구성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다양한 악기가 독주 악기로 등장합니다. 리코더는 그중 2번과 4번에서 나와요. 특히 4번은 두 명의 리코더 연주자가 활약하는데요, 바이올린, 트럼펫, 오보에 등 화려한 고음을 자랑하는 악기들 사이에서 리코더는 특유의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로 작품 전체에 윤기를 더한답니다.

18세기 중반 바로크 시대가 끝나면서 리코더는 무대에서 사라질 뻔합니다. 음역이 한정된 데다 소리도 작아서 점차 플루트에 밀려났어요. 거의 잊히다시피 한 리코더를 부활시킨 사람이 영국의 아널드 돌메치(1858~1940)였어요. 그는 옛 서적들을 참고해 알토 리코더를 제작했고, 마침내 1925년 그동안 플루트가 대신했던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을 원래의 악기인 리코더로 연주하는 데 성공했죠. 그 후 돌메치가 만든 여러 음역의 리코더들이 세상에 다시금 알려지게 됩니다.

꾸준히 이어지는 개량과 연주 기술의 개발, 새로운 창작곡들이 나오면서 리코더는 새 생명을 얻고 있어요.

[20세기 들어 리코더 부활시킨 브뤼헨은 '리코더계 파가니니']

20세기 들어 리코더를 널리 알린 음악인들도 있어요. 네덜란드 출신의 프란스 브뤼헨(1934~2014)은 화려한 기교로 '리코더계의 파가니니'라 불렸습니다.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을 연구한 그는 지휘자로도 활약했는데요, 1981년 '18세기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바로크와 고전 레퍼토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큰 주목을 받았죠.

덴마크 출신으로 현재도 왕성히 활동 중인 미칼라 페트리(61)는 '리코더의 여제'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3세 때부터 리코더를 불기 시작해 11세에 데뷔했어요. 기존 레퍼토리 모두를 정복하자 현대 작곡가들이 그녀를 위해 리코더 작품을 여럿 작곡해줬죠. 마누엘 바루에코(클래식 기타), 핀커스 주커만(바이올린), 키스 재럿(피아노) 같은 거장과 협연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만능 음악인의 면모도 지니고 있죠.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