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 이야기] 하나에 집중하니… 다른것은 눈으로 보고도 '못봤다' 생각

입력 : 2019.07.19 03:09

'보이지 않는 고릴라' 현상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최근 마무리됐어요. 서양의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용이 날아다니고 마법사가 등장하는 판타지물이죠. 그런데 드라마 속 한 장면에 생뚱맞게 '스타벅스' 일회용 종이컵이 등장해 화제가 됐습니다. 방송 전 최종 편집을 한 제작진도, 방송 당시 시청자 대부분도 이런 '옥에 티'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화제가 된 뒤로는 스타벅스가 정식으로 이 드라마에 간접광고(PPL)를 했다면 25만달러(약 2억9500만원)는 광고비로 냈어야 했다는 농담이 돌기도 했죠. 그런데 이런 '옥에 티'를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고릴라' 현상이죠. 어떤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부분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걸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1999년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사이먼스(Simons)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Chabris)는 36명의 대학생 실험 참가자에게 75초가량의 길거리 농구 경기 영상을 보여주었어요. 영상에는 흰색 셔츠를 입은 A팀 선수 3명과, 검은 셔츠를 입은 B팀 선수 3명이 농구공을 패스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참가자들은 흰색 셔츠를 입은 선수들이 서로 몇 번 공을 패스했는지 세어보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그래서 참가자들은 흰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공을 주고받는 장면에 집중했습니다. 90% 이상의 사람들이 정답을 맞힐 수 있는 간단한 과제였죠.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박다솜
그런데 영상 시청이 끝난 다음 실험자들은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혹시 고릴라를 보셨어요?" 절반 조금 못 되는 참가자들이 고릴라를 전혀 못 봤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영상 중간쯤(75초 중 44~48초 시점에 5초간 노출)에 고릴라 분장을 한 사람이 화면 가운데에 나타나서 영화 속 킹콩처럼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치고는 사라졌거든요. 분명히 나타났다가 사라진 고릴라를 많은 참가자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니 놀랍지요? 이런 현상을 '보이지 않는 고릴라(invisible gorilla)'라고 합니다.

집중한 것만 보이는 '선택적 주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 현상은 우리가 주의(attention)를 기울이는 방식과 관련이 있어요. 우리가 가진 주의의 총량은 제한되어 있다는 겁니다. 과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제 수행과 무관한 불필요한 부분(검은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행동)은 배제하고 과제와 관련된 부분(흰색 셔츠를 입은 사람들의 행동)에 선택적으로 집중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의 용돈이 제한돼 있다면 꼭 필요한 물품을 사는 데만 돈을 사용하는 것처럼요. 이걸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은 현실에서도 관찰됩니다. 200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도시별로 보행자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비율을 조사했어요. 보행자가 많은 도시에서 사고 비율이 더 낮았죠. 자동차 운전자가 '보행자가 많은 도시니까 주의해야 해'라고 생각해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더 신경을 썼기 때문입니다. 보려고 하는 것이 보이는 것이죠.

그렇지만 여기에는 부작용도 있어요. 상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다른 부분(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의 출현)은 까맣게 몰랐던 사람들처럼요.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것은 아무리 심각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모를 수 있다는 겁니다.

자동차 추돌 사고의 주요 원인은 '전방 주시 불이행'입니다. 눈은 앞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다가 아차 하는 순간 앞차를 들이받습니다. 운전을 할 때 휴대전화 통화를 피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릴라' 현상은 다중 작업(multitasking)의 어려움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동귀의 심리학 이야기] 하나에 집중하니… 다른것은 눈으로 보고도 '못봤다' 생각

[이 그림, 컵일까? 사람일까?]

1915년 덴마크의 심리학자 에드거 루빈(Rubin)이 소개한 ‘루빈의 컵’〈사진〉입니다. 그림의 가운데 하얀 부분에 집중하면 컵처럼 보이지요. 바깥쪽 검은색 부분에 집중해서 보면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고요. 어느 부분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한 번에 한 가지씩만 볼 수 있습니다.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다른 부분은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 앞서 비슷한 현상을 지적한 겁니다.



이동귀·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