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경일의 심리학 한토막] 시 속 '은유' 읽다보면 과학적 유추능력도 향상되죠

입력 : 2019.07.17 03:00

창의력과 시(詩)

우리나라에서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수상자가 많이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부터 시(詩)를 많이 읽게 하라"는 게 인지심리학자들의 대답입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입니다.

위대한 과학적 발견, 절묘한 사업 아이디어를 보고 우리는 '창의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결과물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생각해내지 못했던 새로운 '연결'을 해냈다는 겁니다.

독일 화학자 케쿨레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우르보로스·왼쪽)'에 착안해 벤젠의 분자식을 찾았어요.
독일 화학자 케쿨레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우르보로스·왼쪽)'에 착안해 벤젠의 분자식을 찾았어요. /위키피디아
물리학에서 원자(原子) 구조를 설명하는 보어 모형의 아이디어는 '태양계'에서 왔습니다. 원자핵(태양) 주위를 전자(행성)들이 원형 궤도를 따라 돌고 있다는 거지요. 원자 구조가 태양계 모습과 닮았을 거라는 '연결적 아이디어'에서 나왔죠.

화학공업에서 많이 사용되는 원료 '벤젠'은 화학적으로 어떤 구조인지 쉽사리 밝혀지지 않았죠. 독일 화학자 케쿨레는 19세기 말 이 문제를 밤낮으로 연구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뱀이 자기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도는 꿈을 꾸고 '순환하는 분자 구조식'이라는 해법을 찾았어요.

이렇게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다른 영역이나 분야의 정보나 지식을 연결해 절묘하게 풀어나가는 정신적 과정을 유추(類推)라고 합니다. 학자들은 이 유추 능력이 인간의 고등 정신 과정 중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능력이고, 유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사고 능력이 뛰어나다고 보지요.

유추는 '서로 관련 없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기존에 있던 생각이나 개념을 새롭게 조합해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찾아내는 거죠.

유추 능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추를 위한 기초 체력이 바로 은유(메타포)입니다. 그리고 은유를 가장 잘 활용하는 장르는 누가 뭐래도 시입니다. 최승호 시인의 '대설주의보'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시인은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상황을 '백색의 계엄령'으로 표현합니다. 계엄령은 국가에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경우 국가원수가 선포하는 명령이지요. 시인은 깊은 산골짜기에 내리는 폭설을 계엄령에 비유한 거예요. 독자는 이 같은 비유를 통해 전혀 연결성이 없을 것만 같았던 단어들의 조합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조합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죠. 그래서 시를 읽는 건 창의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영국 리버풀대학의 닐 로버츠(Roberts) 교수팀이 사람들에게 영미 문학에서 가장 은유가 많다는 셰익스피어의 문학 작품들을 읽게 한 뒤 두뇌 활동을 측정해보니 뇌가 '드라마틱'하게 활성화됐다는 연구도 있어요.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하듯 은유는 창의력을 길러줍니다. 은유는 문학뿐 아니라 삶의 곳곳에 깃들어 있어요. 문학과 예술을 다양하게 경험하면 좋겠죠.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