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2600년 전, 왕비 위해 지어… 겉은 정원, 속엔 100개의 방

입력 : 2019.07.17 03:00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
기록으로 남은 25m 계단형 고대 건축… 멀리서 보면 공중에 뜬 정원처럼 보여
꼭대기서 떨어지는 폭포도 있었죠

지난 5일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였던 바빌론이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신바빌로니아의 수도로 현재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5㎞ 떨어진 곳에 있어요. 이라크는 1983년부터 36년간 노력한 끝에 바빌론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꿈을 이뤘습니다.

바빌론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게 늦어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우선 수많은 전쟁으로 유적이 많이 파괴됐어요. 발굴 작업도 더뎠고요.

바빌론을 대표하는 유적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혔던 '바빌로니아의 공중정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년도 더 전에 이 지역을 다스리던 왕이 향수병에 걸린 왕비를 위해 지어준 초대형 건물이죠.

높이 25m 빌딩에 층층이 꾸민 정원

그리스 역사학자 디오도로스는 "향기를 뿜어내는 꽃,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석류, 세차게 하강하는 폭포수에서 튀는 물방울 모두가 '인간 영역 밖의 아름다움'"이라고 공중정원을 묘사했어요.

사진1~3
①2600년 전 바빌로니아 수도 바빌론에 있었다고 알려진 공중정원의 상상도. ②일부만 복원된 바빌론 남궁(南宮)과 그 터. ③기원전 300년 전에 지어진 그리스식 극장을 복원한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유네스코
이 거대한 정원은 계단형 빌딩을 짓고 그 테라스와 옥상을 정원으로 꾸민 구조였어요. 맨 아래층은 가로·세로 각각 400m에 높이는 25m였어요. 멀리서 보면 하늘에 정원이 솟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공중정원'이란 이름이 붙었지요. 특히 정원 꼭대기에서부터 폭포수 같은 물이 떨어져 내렸다고 해요. 당시 기술로 어떻게 이 높이까지 물을 끌어올렸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불가사의'로 꼽힌 것도 그 때문이에요.

기원전 1세기 그리스 학자 스트라본은 공중정원이 각 층에 아치형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벽돌로 천장을 만든 구조였다고 기록했어요. 층마다 테라스가 있어서 이곳에 흙을 덮은 다음 온갖 나무, 풀, 꽃을 심었죠.

공중정원 내부에는 크고 작은 방이 100개 넘게 있었다고 합니다. 수로의 배치, 풀과 나무의 운반, 방수 문제, 물을 끌어올리는 방법 등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적 역량이 총 집결된 걸작 건축물이었다고 해요.

향수병 걸린 아내에게 바친 선물

바빌론 유적지
공중정원은 신바빌로니아 국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기원전 634년~기원전 562년)가 아내를 위해 지었다고 알려졌어요.

당시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로니아를 위협하는 아시리아 왕국을 물리치기 위해 동북쪽 메디아 왕국의 공주 아미티스와 정략 결혼을 합니다. 그렇지만 먼 타국으로 시집온 아미티스는 심한 향수병을 앓기 시작했어요. 왕은 그녀에게 보석과 비단옷, 희귀한 동물을 선물하고 매일 아름다운 꽃으로 방을 장식해 줬어요. 그래도 아미티스는 맑은 물이 흐르고 푸른 나무들이 무성한 고향의 풍경을 그리워했어요.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아내의 고향에서 나무와 풀, 꽃들을 가져다 공중정원을 만들어 선물했죠. 비록 정략 결혼이었지만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였고, 동맹을 통해 왕국의 번영을 가져다준 은인이기도 했어요.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숨진 뒤 신바빌로니아는 내분에 시달리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멸망합니다. 2500여년 뒤인 1899년, 독일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가 바그다드 인근에서 지금의 바빌론 유적을 찾아냈죠. 공중정원을 찾는 게 콜데바이의 꿈이었지만 지금도 공중정원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아직 바빌론은 전체 유적의 5분의 1 정도만 발굴된 상태이니 언젠가 '공중정원 발견' 소식을 들을 수도 있겠네요.


[또 다른 유적 '마르두크의 지구라트', 성경 속 바벨탑의 모델이죠]

다른 대표적인 바빌론 유적은 성경에도 나오는 '바벨탑'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진 '마르두크의 지구라트'입니다. '하늘과 땅의 기초의 집'이라는 뜻으로 '에테메난키'라고도 불렸어요.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완성한 건물로 높이가 90m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을 짓는 데 가로·세로 각각 30㎝에 높이 8㎝짜리 구운 흙벽돌이 최대 7500만개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맨 꼭대기에는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르두크의 신전이 있었는데, 당시 최고의 보석이었던 라피스라줄리로 둘렀고, 푸른색 자기 벽돌로 장식했어요. 하지만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무너뜨릴 때 파괴되고 말았어요.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