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원주민 수영법 배워와 기록 경신… 물 사이 기어간다는 뜻

입력 : 2019.07.16 03:05

크롤(crawl) 영법

지난 12일부터 광주에서 2019 국제수영연명(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어요. 오는 28일까지 경영, 다이빙, 수구 등 크게 6가지 종목에서 참가자 6000여명이 승부를 겨룹니다.

특히 얼마나 빨리 헤엄치는지 견주는 경영(競泳)은 육상의 달리기처럼 관중을 열광시킵니다. 자유형, 평영, 배영, 접영의 4가지 종목이 있어요. 자유형이 가장 빠른데, 다른 3가지 종목과 달리 정해진 헤엄법이 없어서 자유형, 영어로는 '프리 스타일'(free style)이라고 해요.

하지만 자유형은 이름을 '크롤'이라고 바꿔도 될 정도랍니다. '기어가다'는 뜻의 '크롤'(crawl) 영법이 가장 빠른 속도를 내기 때문에 모두 이 영법으로 헤엄치거든요. 마치 높이뛰기에서 미국의 딕 포스베리 선수가 젖혀뛰기를 선보인 뒤, 모두가 젖혀뛰기 기술을 쓰는 것처럼 말이죠.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4)가 현역 시절 크롤 영법을 펼치는 모습입니다. ‘크롤(crawl)’은 팔을 휘젓는 모습이 기어가는 것과 닮아 붙은 이름입니다.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4)가 현역 시절 크롤 영법을 펼치는 모습입니다. ‘크롤(crawl)’은 팔을 휘젓는 모습이 기어가는 것과 닮아 붙은 이름입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사실 19세기까지만 해도 개구리헤엄이라는 별명이 붙은 평영(breast stroke)을 많이 썼어요. 그 뒤 옆으로 누워 다리를 가위처럼 차며 전진하는 '횡영(橫泳)'이 나왔죠. 하지만 횡영도 평영처럼 팔다리를 물속에서 젓는 방식이라 물의 저항이 커 속도에 한계가 있었어요.

1873년 영국 수영선수 아서 트러젠(Tru-dgen)이 남미를 여행하다가 지역 주민들이 팔을 물 밖으로 내저으면서 헤엄치는 걸 보고 새로운 영법을 만들어냈어요. 팔로는 지금 크롤 영법을, 다리로는 평영 개구리 발차기를 하는 영법이었죠. 평영보다 속도가 빨라 인기를 끌었죠.

지금 같은 크롤 영법의 원조는 1879년 호주로 이민 간 영국 수영코치 프레데릭 카빌(Cavill)이 꼽힙니다. 카빌은 오세아니아 솔로몬제도를 여행하다가 폴리네시아 원주민의 수영 방식을 배웠어요.

오늘날 우리가 아는 '크롤'이 여기서 탄생했어요. 팔을 물 밖으로 내어 휘저으며 물을 튀겨내서 처음에는 '물 첨벙 영법'(spl-ash stroke)이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프레데릭 카빌은 아들 6명에게 이 영법을 가르쳐줬어요.

막내아들 리치먼드 딕 카빌이 크롤 영법으로 1902년 사상 처음으로 자유형 100야드(약 91m) 1분 벽을 깹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물 사이를 기어서(crawl) 헤쳐나가는 느낌"이라고 대답하죠. 크롤 영법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왔습니다.

수영은 여전히 서구, 특히 백인들이 강세를 보이는 종목입니다. 그렇지만 크롤 영법의 원래 주인은 남미와 폴리네시아 원주민들이었죠. 이들이 생활 속에서 위 세대로부터 대대로 전수받아온 수영 방법이 물속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유체역학적 원리를 따르고 있었던 겁니다.

오늘날 기본 수영법이 된 크롤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이 다른 문화의 지혜를 빌려와 기존 방법들과 융합시켜 다듬은 영법이에요.



최의창·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