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전후 프랑스 최고 인기 화가… 그림 속 그는 쓸쓸한 광대
입력 : 2019.07.13 03:00
['베르나르 뷔페'展]
'레지옹 도뇌르' 문화훈장 2차례 받아… 피카소 경쟁자로 불리기도 했어요
쓸쓸함 느껴지는 광대 그림 통해 지울 수 없는 전쟁·가난의 상처 표현
많은 사람 앞에서 우스꽝스럽게 분장하고 나와서 부끄럼을 무릅쓰고, 때로는 다칠 위험까지도 무릅쓰고 재주를 부리는 사람을 광대라고 부릅니다. 빨간 코에 빨간 머리, 새하얀 얼굴, 길게 찢어진 커다란 입의 광대는 현실 속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분장을 지우면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무대 위에 선 자신과 무대 밖에서의 자신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광대는 이중적인 인생을 살게 되지요.
광대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외롭습니다. 박수를 치며 환호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가버리고 나면 휑한 분위기 속에 자기만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니까요. 오래도록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에게 아마 나는 광대로 기억되겠지요"라고 말합니다.
오는 9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광대' 베르나르 뷔페가 약 50년 동안 그린 작품 중 90점을 시대별로 소개합니다.
뷔페는 18세라는 이른 나이에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뒤 여러 예술상과 비평가들이 뽑은 상을 휩쓸었어요.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아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뛰어난 업적으로 프랑스를 빛낸 사람에게 주는 '레지옹 도뇌르' 문화훈장도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광대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외롭습니다. 박수를 치며 환호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가버리고 나면 휑한 분위기 속에 자기만 홀로 덩그러니 남겨지니까요. 오래도록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랑스의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에게 아마 나는 광대로 기억되겠지요"라고 말합니다.
오는 9월 1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광대' 베르나르 뷔페가 약 50년 동안 그린 작품 중 90점을 시대별로 소개합니다.
뷔페는 18세라는 이른 나이에 화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은 뒤 여러 예술상과 비평가들이 뽑은 상을 휩쓸었어요.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아서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가 1위에 선정되기도 했어요. 뛰어난 업적으로 프랑스를 빛낸 사람에게 주는 '레지옹 도뇌르' 문화훈장도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 ▲ ①'드래그 퀸'(1998). ②'생선 뼈'(1963). ③'남자와 꽃게'(1947). ④'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아나벨'(1960). ⑤'록펠러 센터, 뉴욕 풍경'(198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베르나르 뷔페 재단
그림 속에서도 그는 종종 자신의 모습을 웃고 있지만 어딘가 쓸쓸한 표정의 광대로 빗대어 그리곤 했어요(작품 1). 이 전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평생 그림을 그렸던 한 예술가의 삶을 살펴볼 좋은 기회입니다.
뷔페의 작품은 검은색 윤곽선이 두드러집니다. 그가 팔레트 위에 가장 많이 짜서 쓰는 물감은 검은색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작품 2를 볼까요. 물고기의 가시를 그린 이 그림은 오직 검은색만으로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살 없이 가시만 그린 물고기처럼 그림 왼편에 있는 그의 서명까지도 마르고 날카로운 글씨체로 썼지요.
뷔페는 물고기의 표면 질감보다 윤곽선을 그리는 것에 매력을 느꼈어요. 아예 피부가 뼈처럼 딱딱한 바닷가재나 게도 그림의 소재로 좋아했습니다.
작품 3은 뷔페가 열아홉 살에 그린 그림인데, 그림 속 비쩍 마른 남자는 얼굴도 역삼각형이고 어깨도 지나치게 각이 져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이 가진 부드러운 살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지요. 얼굴을 그릴 때에도 눈, 코, 입과 굴곡이 있는 부분을 모두 선으로만 표현하다 보니 주름이 많아져 그림 속 인물들 모두 나이 든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요.
아내의 까맣고 커다란 눈을 그리기에는 검은 선의 표현법이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작품 4를 보세요. 마치 만화 속 인물처럼 눈이 커다란 여인이 바로 뷔페가 그린 아내, 아나벨입니다.
신혼 시절에 검은색 레이스로 장식된 드레스를 입고 저녁 모임에 함께 다녀온 아내가 뷔페의 눈에 눈부시게 아름다웠나 봅니다. 그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던 뷔페는 이렇게 아내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두었습니다. 화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인 아나벨과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나누며 살았고, 죽을 때에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몽땅 아내에게 넘겼습니다.
아나벨은 늘 남편이 작업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꼬박꼬박 느낀 점들을 글로 써두었어요. 그 글들은 뷔페의 전시가 열릴 때마다 남편의 그림과 함께 도록에 실리곤 했지요. 아나벨의 노트를 읽으며 뷔페의 그림을 보면 마치 오래전부터 화가와 가까이 알고 지냈던 기분이 듭니다. 무대 위에 올라 박수갈채를 받는 뷔페가 아니라 홀로 남겨진 쓸쓸한 광대로서 그가 어땠을지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요.
뷔페가 즐겨 그린 또 하나의 소재는 세계 여러 도시의 대표적인 건물입니다. 작품 5는 미국 뉴욕에 있는 록펠러센터입니다. 뉴욕을 찾았을 때 하늘을 찌를 듯한 뉴욕의 높은 건물들과 그것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감동을 받아 그린 것이죠. 건물과 도시 그림에서도 직선과 수직 그리고 검은 윤곽선이 가득한 뷔페 특유의 스타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남긴 작품만 8000여점]
뷔페는 192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나치가 점령하고 있던 파리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견디며 그림을 배웠죠.
그는 덩치는 컸지만 부끄럼이 많고 말수가 적었다고 합니다. 뷔페는 특정 예술가들 그룹에 속한다거나 다른 화가와 많이 교류하지는 않았어요. 혼자 고민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갔죠. 피카소의 경쟁자로 불렸던 뷔페였지만, 피카소만큼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데는 이런 성격도 한몫했을 겁니다. 뷔페는 오직 그림 그리는 일에만 몰두했어요. 자신은 그저 모두를 웃기고 울리는 광대일 뿐이라던 이 소박한 화가는 1999년 숨졌는데, 8000점이 넘는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을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