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뜨거운 물 뿜는 바닷속 굴뚝… 생명 탄생의 장소로 추측

입력 : 2019.07.11 03:05

열수분출공

우리나라 무인 잠수정 '해미래'가 오는 9월 심해탐사에 나서기로 했어요. 많은 사람이 바다로 놀러 가는 계절이지만 사실 바다엔 아직 인간이 모르는 미지의 공간이 훨씬 많아요. 특히 수심 수천m에 달하는 심해는 수압 때문에 사람이 직접 발을 디디기 어렵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해 탐사가 계속되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이런 심해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에서 생명이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예요.

열수분출공이란

1977년 미국 해군 소속 잠수정 앨빈호가 남아메리카 갈라파고스 근처 심해에서 뜨거운 물과 기체가 뿜어져 나오는 바닷속 굴뚝 '열수분출공'을 처음으로 발견했어요. 열수분출공은 해저 지각에서 마그마로 인해 데워진 뜨거운 물과 기체가 차가운 심해 바닷물(약 2도)로 분출되는 곳이에요.

열수분출공은 두 종류가 있어요. 아주 뜨거운 산성의 물이 검은 연기처럼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블랙 스모커(black smoker), 더 낮은 온도이면서 강한 알칼리성을 띤 따뜻한 물이 하얀 연기처럼 뿜어져 나오는 화이트 스모커(white smoker)예요.
열수분출공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이 중 블랙 스모커는 지각 운동이 활발한 곳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화산활동처럼 격렬하게 한 개의 분출구에서 검은 연기를 수직으로 내뿜는 굴뚝 같은 모습이 특징이지요. 반면 화이트 스모커는 여러 개의 작은 분출구에서 하얀 연기가 스며 나오는 게 특징이에요.

열수분출공 주변은 물이 깊어 태양 빛이 도달하지 못하고, 수압이 지상의 수백 배에 달하는 곳이에요. 그런데도 열수분출공 근처에는 눈이 없는 새우 같은 갑각류, 관벌레류, 갯지렁이류 등 다양한 생물이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죠.

생명 기원의 단서

과학자들은 특히 열수분출공 중에서도 '화이트 스모커'에 주목했어요. 심해에서 솟아오르는 알칼리성 바닷물이 산성 바닷물을 만나면 바닷물에 녹아 있던 수산화광물이 열수공 주위에 쌓이며 암석 기둥이 만들어져요. 암석 내부에는 미로처럼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가 형성되고요. 이곳에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 쌓이게 돼요.

뜨거운 물에 기체 상태의 수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과학자들이 열수분출공이 생명이 탄생한 장소라고 추측하는 한 가지 이유예요. 수소가 이산화탄소와 만나면 생명체의 구성 물질(유기분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복잡한 구조의 화이트 스모커에서는 이런 유기분자가 많이 쌓일 수 있어요. 과학자들은 그들이 서로 반응해서 아미노산과 단백질 같은 중요한 생명 물질들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고 있어요. 뜨거운 물을 뿜는 바닷속 굴뚝이 생명 탄생의 장소가 된 셈이지요.

바다를 넘어 우주로

열수분출공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외계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지게 됐어요.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태양에 가까이 있는 지구나 화성 정도까지만 생물이 살 수 있을 거라고 봤어요.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에너지원이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열수분출공처럼 태양에너지가 닿지 않고, 저온에 고압인 극한 조건에서도 생명체가 출현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천체에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커져요. 대표적인 사례가 토성의 위성 엔켈라두스(Enceladus)예요. 이곳 환경은 열수분출공과 비슷하다고 해요. 과학자들은 이곳에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죠. 생명 기원의 단서를 찾아 깊은 바닷속으로 떠난 모험이 우주 생명체 연구와 연결된다니 재미있지 않나요.

[처음엔 지구의 대기 중에서 생명이 생겼다고 생각했죠]

1953년 미국의 화학자이자 생물학자인 스탠리 밀러(Miller·1930~2007)는 실험실에서 원시 지구 환경을 똑같이 재현해보려 했어요. 생명체 탄생의 비밀을 풀어보기 위해서였죠.

밀러는 원시 대기에 메탄, 암모니아, 수소 등이 풍부했을 거라고 봤어요. 그와 비슷하게 혼합한 기체를 커다란 유리 플라스크에 집어넣고, 번개를 대신할 전기 스파크를 일으켰어요. 그러자 플라스크 안에서 몇 가지 아미노산이 발견됐어요.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만드는 기본 물질이에요. 아미노산이 레고블록처럼 여러 개 연결되면 거기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데, 단백질은 생명체에 꼭 필요한 구성 물질이죠. 기체 혼합물에 전기 충격을 줬을 뿐인데 생명체의 기본 구성 물질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과학자들은 생명의 기원이 밝혀졌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이후의 연구들에서 실제 원시 대기의 성분이 밀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아미노산이 서로 연결되는 대신, 공중에 흩날려버렸을 거라는 지적도 나왔어요.

이후 생명은 대기 중이 아니라 바닷속 열수분출공 근처에서 처음 생겼을 거라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답니다.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