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예쁜 말 바른 말] [96] '주책없다'와 '주책이다'

입력 : 2019.07.11 03:03

"주책없이 왜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야?"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다니, 그 사람 참 주책이야."

위의 밑줄 친 두 표현을 볼까요? 어근인 '주책' 뒤에 각각 '~없이'와 '~이야'가 붙어 있습니다. 긍정 어미와 부정 어미가 붙어 있으니 서로 다른 반대되는 뜻으로 보이죠.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둘 다 '일정한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며 실없다'는 같은 의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주책은 한자어 '주착(主着)'에서 온 말입니다. 주착은 '줏대가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해 흔들림이 없다'란 뜻입니다. 주책으로 발음이 굳어져서 현재는 '주책'만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죠.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정서용

주책이 '일정하게 자리 잡힌 주장이나 판단력'을 뜻하니 그 반대, 즉 '일정한 줏대가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상태'는 '주책없다'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언어생활에서 '주책'은 누군가를 흉볼 때처럼 부정적인 맥락에서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주책없다'라고 쓰는 거죠. '주관이 뚜렷하다'고 말할 때 '주책 있다' 같이 써도 될 것 같은데 그런 용례는 찾기 어려워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이 "그이는 참 주책이야" 같은 표현을 쓰기 시작했어요. 원래대로라면 "그이는 참 주책없어"라고 해야 하는데 '없어'를 떼어버린 겁니다. 물론 이는 정확하지 않은 표현이었어요. '주책없다'는 뜻으로 '주책이다'를 쓰는 거니까요. 하지만 실생활에서 두 표현이 섞여 쓰이자 국립국어원은 2017년 '주책이다'를 표준어로 인정하게 됐어요. '주책없다'와 '주책이다'가 같은 뜻이 된 것이죠. 국립국어원은 같은 해 '주책맞다' '주책스럽다'도 표준어라고 정리했습니다. '주책'은 어떻게 써도 맞는 표현이라는 걸 기억하시면 됩니다.

〈예시〉

―나는 주책도 없이 어른들 앞에서 마구 떠들었다.

―아저씨는 술에 취하면 주책없이 횡설수설하는 버릇이 있어 이웃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다 늙은 영감이 주책이라며 할아버지께 눈을 흘겼다.

―어딜 가든지 주책이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좀 더 신중하면 좋겠다.

―어머니가 "아내밖에 모르는 주책바가지"라고 아들에게 눈을 흘기자, 모두 손뼉을 치며 웃었다.


류덕엽·서울 양진초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