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유럽에 명성 떨친 日 도자기 가문, 조선 도공의 후손들이죠

입력 : 2019.07.10 03:00

[심수관家]
정유재란 때 日 끌려간 도공 심당길, 백자 생산해 일본 도자기 발전에 기여
후손 12대 심수관의 '대화병'이 유명
그 이후로 대대로 가문의 당주가 '심수관'이라는 이름 물려받아 써

조선 도공의 후예인 일본의 도자기 명가 심수관(沈壽官)가의 제14대 심수관(일본명 오사코 게이키치)이 지난 16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심수관가는 16세기 말 정유재란 당시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도공 심당길과 그 후손들을 일컫는 말로, 12대 심수관(1835~1906)씨 이후 가문 당주(堂主)가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아 쓰고 있어요. 일본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수많은 도공을 포로로 끌고 돌아갔죠. 왜 그랬을까요?

조선의 명품 도자기를 탐낸 일본

15~16세기 일본 상인 사이에 다도(茶道)가 유행하기 시작해, 유력 다이묘와 승려에게 퍼져 나갔어요. 그 과정에서 질 좋은 찻그릇을 찾는 권력자들이 늘었죠.

12대 심수관이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높이 77㎝의 도자기.
12대 심수관이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높이 77㎝의 도자기. 그는 1873년 빈 엑스포에 높이 1.55m의 대화병 한 쌍을 내놓으면서 사쓰마 도자기를 널리 알립니다. 12대 심수관은 조선식 옹기 제조법을 도자기에 접목해 크기를 키웠다고 합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그러나 당시 일본의 도자기 제작 기술은 명나라와 조선에 못 미쳤어요. 일본은 도기는 생산이 가능했지만 자기는 만들지 못했어요. 자기는 1300도에 가까운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 도기보다 더 단단하죠. 또 손으로 쳤을 때 맑은 소리가 난다는 특징이 있어요.

그렇지만 일본에는 이런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는 흙도, 가마도 없었어요. 그래서 높은 온도를 견디며 만들어진 조선의 백색 자기가 명품으로 꼽혔어요. 특히 사발 모양의 백색 자기가 인기였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한 뒤 임진왜란을 일으켰죠. 그는 '많은 조선 장인들을 잡아오고 그들 중 우수한 자들을 각별히 뽑아 관리하라'고 명령했어요. 도공도 여기 포함됐죠. 그래서 무수한 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갑니다. 특히 일본 지역 영주들은 도자기를 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 더더욱 조선 도공을 데려가려 했죠.

서양을 사로잡은 일본 도자기

아리타, 가고시마
포로로 끌려온 이삼평과 심당길 같은 조선 도공 덕분에 일본 도자기는 크게 발달합니다. 이들은 백자를 만들 수 있는 흙을 찾아내고, 조선식 도자기 가마도 일본에 도입했어요.

이렇게 도자기 제작 기술이 발달하면서 일본은 세계 도자기 시장에도 진출합니다. 15세기 이후 포르투갈, 에스파냐 같은 유럽 국가들은 명나라 도자기를 앞다퉈 사갔죠. 영어로 자기를 차이나(china)라고 부를 정도로요. 그런데 마침 일본 도자기가 발달하던 시기 명나라가 멸망합니다.

서양은 일본 도자기로 눈을 돌렸어요. 일본은 처음에는 서양인들 주문대로 중국풍 청화백자를 만들었죠. 그렇지만 중국 도자기를 흉내만 내서는 서양인들을 사로잡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붉은색, 노란색, 녹색 등의 물감을 써서 다채로운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하죠. 화려한 일본 도자기에 서양은 푹 빠집니다. 17세기 이후 일본은 중국에 버금가는 도자기 수출국이 됩니다. 조선과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세계에서 통하는 상품을 만들어낸 거예요.

빈 만국박람회에서 명성 떨친 심수관

이렇게 유럽에 명성을 떨치게 된 일본의 대표 도자기 중 하나가 바로 심수관가의 '사쓰마 도자기'입니다. 심당길과 그 후손이 일본 사쓰마 지역 가고시마 인근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특히 12대 심수관이 유명해요. 그는 파리 만국박람회(1867년)와 오스트리아 빈 만국박람회(1873년 ), 시카고 만국박람회(1893년)에 작품을 냈어요. 특히 빈 박람회에 낸 1m55㎝ 높이의 대화병 한 쌍이 유명해요. 금가루로 화려하고 정교하게 사계절 그림을 그려넣은 작품이었죠.

지금은 14대 심수관에 이어 그의 아들이 15대 심수관(일본명 오사코 가즈테루)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일본에서 이렇게 선대의 이름을 계승하는 것은 선대의 문화적 업적이 엄청나다는 뜻이랍니다.


[백자 생산법 알려준 이삼평]

심수관만큼 유명한 또 다른 조선인 도공이 바로 이삼평(?∼1656)이에요. 아리타(有田) 지역에 포로로 끌려온 이삼평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순백의 조선식 자기를 생산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현재에도 아리타 지역에서는 그를 '도조(陶祖·도자기의 시조)'로 받듭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자기를 '아리타 자기'라고 부릅니다. 흰색 자기를 바탕으로 여러 색을 칠해서 만든 것이 특징인데요, 그중에서도 남색 한 가지만 사용해 만드는 자기가 서양에서 큰 인기를 얻었어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통해서 1650년부터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