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적과 친구를 구별하던 가문의 문장… 현재 기업 로고의 뿌리예요

입력 : 2019.07.09 03:05

로고

비스듬한 파란색 타원형, 한입 베어 문 사과, 오묘하게 웃는 여인이 등장하는 초록색 원…. 이런 설명을 듣자마자 삼성, 애플, 스타벅스가 떠오를 겁니다. 현대인은 셀 수 없이 많은 로고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로고는 한 대상을 다른 대상과 구별하는 시각적 상징이지요. 회사 이름만 쓰기도 하고, 어울리는 그래픽 요소를 넣기도 해요. 두 가지를 모두 활용하기도 하고요.

로고는 사실 인류 문명과 함께한 오랜 친구입니다. 자신의 위세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이건 내 것'이라고 소유를 확실히 하는 명쾌한 시각 장치니까요.

최초 로고는 인장(印章)입니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500년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굳지 않은 찰흙에 쐐기 문자를 새겼어요. 이들에게 원통형 인장은 매력적 도구였지요. 이름을 새기거나 인물이 등장하는 서사적 이미지를 고안해 고위층 신분을 증명하는 표시로 공공 문서에 썼어요. 이를 로고의 기원으로 본답니다.

이후 고대 로마 시대에는 반지와 동전에 초상화를 새겼어요. 로마 황제 초상화가 '이건 로마의 돈'이라고 알린 것이죠.

10세기 유럽의 앵글로색슨족은 소나 말에 불로 달군 인두로 낙인을 찍어 자기 소유물이라고 알렸어요. '불(brandr)'을 뜻하는 노르웨이어가 현대 영어 브랜드(brand)의 어원이 됐죠.
합스부르크가(家) 출신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문장(왼쪽). 일본 전국시대를 끝낸 도쿠가와가(家)의 제비꽃 문양.
합스부르크가(家) 출신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문장(왼쪽). 일본 전국시대를 끝낸 도쿠가와가(家)의 제비꽃 문양. /위키피디아
난세에 로고는 적과 친구를 구별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 많이 쓰던 가문의 문장(紋章)이 대표적이죠. 유럽에서는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하고자 방패에 문양을 새겼어요. 각종 상징적 그림을 그려 넣고, 특정 인물에 맞춰 문장을 섬세하게 변형하기도 했죠. 문장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느 가문 누구의 아들딸인지, 심지어 배우자는 살아있는지 죽었는지까지 알 수 있게요.

일본 전국 시대에는 여러 가문 문장이 250개를 넘었다는 기록도 있어요. 갈수록 복잡해졌던 유럽 문장과 반대로 일본 로고는 아주 정돈돼 있습니다. 모과꽃(오다 노부나가), 오동나무(도요토미 히데요시), 제비꽃(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식물을 모티브로 한 문장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죠.

'네 것과 내 것' '적과 아군'을 알려주는 로고의 전성시대는 19세기 들어 시작됩니다. 자본주의가 싹트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상표권 제도가 본격적으로 발달합니다. 로고는 특정 상표를 알리는 필수 도구가 됐어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로고 디자인은 기업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면으로 발전합니다. 심미적 부분뿐만 아니라 경영 전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됐지요. 로고 붐은 21세기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