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자유로 가는 문 열자"며 열쇠 흔든 50만명, 민주주의 쟁취

입력 : 2019.07.03 03:00

[체코슬로바키아 '벨벳 혁명']
1989년 6주간에 걸친 전국적 시위, 사망자 없이 공산정권 무너뜨려

지난달 23일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광장에 25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모여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어요. 바비스 총리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휘말린 상태입니다.

이번 시위를 두고 많은 언론이 '1989년 공산 정권을 무너뜨린 벨벳 혁명(Velvet Revolution) 이후 최대 규모 평화 시위'라고 보도했어요. 벨벳은 깃털처럼 부드러운 비단의 한 종류예요. 혁명에 왜 '벨벳'이란 이름이 붙은 걸까요?

벨벳처럼 부드러운 혁명

"이것은 벨벳 혁명이다." 체코 민주화 운동가 바츨라프 하벨(1936~2011)이 공산 독재를 무너뜨린 직후에 한 연설이에요. 마치 벨벳처럼 부드럽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뜻이었어요.

1989년 11월 25일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 50만명이 넘는 시민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어요.
1989년 11월 25일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 50만명이 넘는 시민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어요. 이들은 약 6주에 걸친 시위를 통해 한 명의 목숨도 잃지 않고 평화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했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체코슬로바키아는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생긴 다민족국가예요.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독일인, 기타 소수민족이 섞여 살았죠. 2차 세계대전 후 1948년부터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일당 독재를 시작했어요. 정부가 책과 신문을 검열하고, 비밀경찰이 삼엄하게 국민을 감시했죠.

'프라하의 봄'은 오지 않고

1960년대가 되자 경제가 갈수록 나빠졌어요. 공산당에 대한 불만도 점점 더 커졌죠. 지식인들이 민주화를 주장했어요.

체코, 슬로바키아
처음엔 공산당 내에서도 변화가 시작됩니다. 1968년 1월 공산당 내 개혁파인 알렉산드르 둡체크가 지도자가 되자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내세웠어요. 의회제도를 확립하고,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보장했지요. 개혁을 향한 열망이 충만했던 이 8개월간을 '프라하의 봄'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공산 진영의 리더인 소련은 이런 움직임이 다른 동유럽 국가로 번질까 두려웠어요. 같은 해 8월 소련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어요. 둡체크는 해임되고,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내 개혁파는 숙청됐어요.

9년 뒤인 1977년 민주화 운동가이자 극작가인 하벨이 주도해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77헌장'을 작성했어요. 공산당은 헌장을 압수하고 하벨을 구속했어요. 민주화 운동은 끝장난 듯 보였어요.

하벨이 주도한 민주화 운동

1980년대 중반 소련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하며 동유럽은 변화의 물결에 휩싸입니다. 동유럽에서 연쇄적으로 공산정권이 무너졌어요.

이때만 해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꿈쩍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학생들이 나섭니다. 1989년 11월 17일 프라하에서 학생 수천 명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국립묘지에서 바츨라프 광장으로 행진하자, 경찰이 야경봉으로 진압했어요.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지만 이 사건으로 민주화 시위와 총파업이 전국으로 번졌어요. 6주일에 걸친 '벨벳 혁명'이 시작된 거죠.

교도소에서 풀려나 있던 하벨은 '시민포럼'을 결성했어요. 자유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프라하에서만 5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어요. 이들은 열쇠고리를 흔들었어요. 자유로 가는 문을 열쇠로 열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 행동이었죠. 결국 공산당 정권은 무너지고,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체코슬로바키아에 주둔하던 소련군 7만여 명도 철수했어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벨벳 이혼']

'벨벳 혁명'으로부터 약 3년이 지나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독립한 것을 '벨벳 이혼'이라고 부릅니다. 평화 혁명처럼 평화로운 분리·독립이었거든요.

벨벳 혁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이 탄생했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언어와 문화가 조금씩 달랐어요. 슬로바키아 입장에선 인구가 두 배 많은 체코가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가진 것도 못마땅했고요. 결국 두 나라로 나뉘었지만 지금도 우호적인 사이라고 합니다.


윤서원 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