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의 심리학 한토막

[김경일의 심리학 한토막] 아픔 담당 뇌 부위, 매 맞기 전부터 활성화… 기다리는 것도 고통

입력 : 2019.07.03 03:00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영수네 3형제가 피자 한 판을 나눠 먹으면서 마지막 한 조각을 서로 먹겠다고 다투다가 밥상을 엎었어요. 평소에는 자상하던 부모님도 오늘만큼은 화가 단단히 나셨어요. 사랑의 매를 들고 맏이인 영수에게 물어봅니다. "누가 먼저 매를 맞겠니?" 이때 영수는 먼저 매를 맞는 게 좋을까요, 나중에 맞는 게 좋을까요?

영수가 심리학 공부를 했다면 손을 번쩍 들고 '먼저 맞겠습니다'라고 했을 겁니다. 그게 덜 아프기 때문이지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지 미국 심리학자가 실험해 봤습니다.

지난해 열린 대전효문화뿌리축제에서 한 소녀가 '불효자 회초리 체험'을 하고 있어요.
지난해 열린 대전효문화뿌리축제에서 한 소녀가 '불효자 회초리 체험'을 하고 있어요. /대전효문화뿌리축제
2006년 미국 에머리대 그레고리 번스 교수팀은 일반인 32명을 대상으로 다리에 전기충격을 주는 실험을 했어요. 충격 강도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정도부터, 바늘로 찌르는 수준까지로 차이를 뒀지요. 그러면서 자기공명영상으로 뇌 반응을 촬영해서, 그 결과를 유명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었어요.

실험 결과, 연구진은 고통을 감지하는 뇌 부위가 실제로 전기충격이 가해지기 전부터 활성화된다는 걸 알았어요. '곧 매를 맞는다'라고 생각하면 매를 맞기 전부터 맞을 때까지 계속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죠.

또 참가자들한테 선택지를 줘봤어요. '3초 만에 충격을 받을지 20초 기다렸다가 충격을 받을지' 묻는 식이었지요. 고통이 동일한 경우, 대부분 사람은 '빨리 맞자'라고 선택했어요.

흥미로운 부분이 그다음 대목인데요, 32명 중 9명은 20초를 기다렸다가 약한 충격을 맞느니, 3초만 기다리고 더 강한 충격을 받기를 선택했어요. 이 사람들의 뇌에서는 충격을 기다리는 동안이나 실제로 충격이 가해지는 동안이나 똑같이 격렬한 반응이 나타났어요. 매 맞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실제로 매를 맞는 순간만큼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얘기죠.

따라서 고통을 덜 느끼고 싶다면 먼저 매를 맞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매를 맞으면 앞서 맞는 두 형제를 보면서 계속 불안해져서 결국 처음 맞은 아이보다 더 아프게 느끼기 쉬워요.

재밌는 것은 처음 맞는 아이, 즉 가장 고통이 적은 아이가 마지막으로 맞는 아이보다 반성을 더 많이 한다는 겁니다. 아픔의 강도와 반성 수준이 반비례한다는 거예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초수정(超修整·hyper correction) 효과'라고 부릅니다. 무슨 뜻일까요? 나중에 매를 맞는 사람은 먼저 매를 맞는 사람의 반응을 보고 어느 정도 아플지 예상합니다. 하지만 처음 매를 맞는 사람은 직접 맞기 전까지 얼마나 아플지 예상하기 힘들죠. 그래도 똑같은 매라도, 처음 맞는 사람이 더 많이 놀라게 마련이에요. 사람은 놀랐던 일을 아팠던 일보다 더 잘 기억하기 때문에, 나중에 매를 맞은 사람보다 처음 매를 맞고 놀란 사람이 자기 행동을 더 잘 고치게 되는 거예요.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