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화사한 배경 위 섬뜩한 사고현장… 일상 덮친 재난 그렸죠
입력 : 2019.06.29 03:00
['재난'展]
새하얀 눈산 위 추락한 비행기… 화려한 색으로 참혹함 증폭시켜
사람과 사람은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요?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공감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고 대답할 겁니다. 1947년에 출간된 그의 소설 '페스트'는 갑작스럽게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한 알제리의 도시 오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오랑에 무서운 전염병 페스트가 발병합니다. 병균이 다른 곳으로 퍼질까 봐 시민들은 오랑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고, 대부분 집에 갇혀 지내게 되지요. 이들은 처음엔 서로 경계하며 안절부절못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페스트가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서로 처지에 공감하며 재난을 한마음으로 버텨내지요.
전염병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자연재해와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어요. 가난으로 인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쟁으로 폭격을 받는 나라도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 가면 이런 재난을 보고 느끼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미술 작품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만날 수 있어요. 8월 18일까지 '재난' 전시가 열리거든요.
전염병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자연재해와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어요. 가난으로 인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전쟁으로 폭격을 받는 나라도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에 가면 이런 재난을 보고 느끼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미술 작품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볼 기회를 만날 수 있어요. 8월 18일까지 '재난' 전시가 열리거든요.
- ▲ ①고영미, '그날'(2012), 한지 위에 채색. ②박경진, '반경0㎞ #14'(2014), 캔버스에 유채. ③민유정, '어느 날 공원에서'(2013) 캔버스에 유채. ④하태범, '뉴욕911-1'(2009), 알루미늄복합패널 위에 프린트. ⑤장우진, '부서진 풍경'(2017), 벽화. /서울대학교미술관
질병으로 인한 재난은 '페스트' 같은 소설 속 일도, 사람만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작품2를 보세요. 축사에 있는 오리들을 커다란 파란 비닐로 씌워 땅속에 파묻으려 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아마 낯설지는 않을 거예요. TV 뉴스에서 종종 보았을 테니까요. 화가는 왜 죽음 직전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몰려다니는 오리를 그림으로 남겼을까요? 닥쳐올 재난 앞에서 무방비하기로는 인간도 오리와 비슷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겠지요.
작품3은 멀찌감치서 공원 잔디밭을 그렸어요. 얼핏 보면 평화로운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섬뜩합니다. 그림 가운데에 얼굴이 가려진 채 무릎을 꿇고 손이 묶인 사람이 언뜻 보입니다.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 여럿이 서 있고요. 테러의 순간을 담은 그림인데, 화가는 그 비극적인 순간을 평안하고 차분한 기분을 주게끔 그렸어요. 사건 현장에 있는 당사자가 아니라 TV나 인터넷에 뜬 이미지를 구경꾼 입장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런 걸까요. 아니면 거기 잡혀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의 마음이 슬며시 나타난 걸까요.
재난 피해자의 소식을 처음 접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 것처럼 아프게 느끼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을 뉴스에서 계속 반복해서 보고 듣게 되면 침울한 상황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피하게 돼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재난에 대한 '공감 피로' 증상이라고 부릅니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도 계속 접하다 보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죠.
작품4는 작가가 재난 현장을 보도사진으로 본 후 오직 흰색만을 사용해서 그 현장을 모형으로 만들고 사진으로 찍은 것입니다. 아무런 색깔을 입히지 않아서 그런지 마치 하얗게 감정을 표백해버린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 사건의 현장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얼마나 절망적인 상황이었을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재난 이미지를 습관처럼 자주 대하다 보니 이제 어떤 처참한 이미지를 봐도 놀라지 않고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지적하는 것 같네요.
작품5의 작가 역시 보도사진을 이용했어요. 그는 하얗게 감정을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희미한 기억 속으로 점차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방식으로 재난 현장 속의 아이들을 보여줍니다. 어린 시절에 리비아에서 잠시 살았던 작가는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곳의 장면과 지금까지도 간혹 뉴스에서 보여주는 처참한 장면을 함께 떠올리지요. 보도사진 속에 찍힌 이 아이들은 폭격으로 부서져 버린 건물 앞에서 장난감 대신 돌멩이를 쥐고 서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는 건 아닐까요. 그렇지만 대부분 우리는 이런 이미지를 구경하는 구경꾼에 머무르고 맙니다.
'재난' 전시에서 여러 예술가는 재난 그 자체보다 재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목적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에 있지요. '공감 피로' 증상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이 이겨내야 할 가장 힘겨운 적일지도 몰라요.
[피카소도 그렸어요… 전쟁의 공포 담은 '게르니카']
인간이 일으킨 재난, 즉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고발한 거장도 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대표작 '게르니카'(1937·그림)를 통해 전쟁의 잔혹성을 보여줬죠.
- ▲ /스페인 마드리드 소피아왕비미술관
비극적인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를 담은, 길이가 7m가 넘는 이 작품을 그립니다. '게르니카'는 같은 해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돼 세계에 전쟁의 잔인함을 알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