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중국은 홍콩 시위를 보며 대만 여론을 걱정했어요

입력 : 2019.06.28 03:00

[홍콩 시위]
홍콩서 '범죄인 인도법 개정' 반대해 200만명 규모 시위 일어났어요
유혈사태 우려됐지만 평화적 마무리

"무소식이 희소식(No news is good ne-ws)"이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을 바꾸면 '뉴스는 대개 나쁜 소식'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모처럼 '좋은 뉴스'가 있었어요.

최근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을 개정해 범죄인을 중국에 넘길 수 있도록 허용하려 하자, 수많은 홍콩 사람이 법 개정을 막기 위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였어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장차 중국을 비판한 언론인이나 민주화 운동가들이 중국 손에 넘어가 고초를 겪고, 결과적으로 홍콩의 민주주의가 위협당할 거라는 이유였어요. 주최 측은 시위대 수가 200만명이라고 추산하고 있어요.

홍콩 사람들이 시위를 벌인 건 이번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이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할 때 맺은 협정에 어긋난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은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 체제를 인정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에 두 정치 제도)'를 약속했어요.

지난 19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현장에 대만 깃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등장했어요.
지난 19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현장에 대만 깃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등장했어요.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지만, 대만은 중국과 통합되기를 꺼리죠. 중국이 '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대만이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이유입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 시위가 몇 주일씩 계속되자, 홍콩 정부를 이끄는 캐리 람 행정장관이 결국 굴복했어요. 람 장관은 지난 15일 법 개정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어요. 홍콩 사람들은 일단 소중한 승리를 거뒀어요.

홍콩은 1842년 청나라와 영국 사이에 불거진 아편전쟁의 산물이에요. 청나라는 아편전쟁에 패해 영국과 난징 조약을 맺고 홍콩 섬을 영국에 넘겼죠. 이에 덧붙여 영국은 1898년 홍콩 인근 신계지구도 99년간 '조차'했어요. 조차란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일정 기간 빌리는 걸 뜻해요. 무너져가던 청나라는 영국의 요구에 속수무책 따라야 했죠. 영국은 1997년 약속대로 신계지구를 중국에 돌려주면서 홍콩도 함께 반환했어요. 중국 입장에선 굴욕적인 역사죠.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는 착취가 심하고 혹독했어요. 그래도 식민주의라는 악습에서, 뜻하지 않게 나온 좋은 결과가 바로 홍콩인지 몰라요. 홍콩은 '동서양이 만나는 접점'으로 번창해왔어요. 영국 식민지 때 만들어진 여러 가지 사회제도가 지금도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곳이기도 해요.

사법 시스템이 좋은 예예요. 홍콩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에 생긴 홍콩의 사법 제도에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적법 절차와 배심 재판에 따라 범죄인을 다스리는 시스템이죠. 이에 비해 중국 사법 제도는 더 혼탁해요. 사형 판결이 잦을 뿐 아니라, 정부에 미움받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어요.

현재 홍콩은 '아시아의 세계도시(Asia's World City)'를 공식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어요. 이 슬로건에는 '홍콩은 중국과 다르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요. 외국 투자자와 관광객에게 홍콩은 중국과 달리 국제사회의 룰에 따르는 도시이고, 법치가 이뤄지는 도시라고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죠. 홍콩이 일부러 중국을 화나게 하려고 이 브랜드를 택한 건 아닐지 모르지만, 홍콩이 내세우는 브랜드에는 '국제사회의 룰이 중국의 사회주의 시스템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가 배어 있어요. 중국 정부에 대한 미묘한 도전이지요.

홍콩의 존재 자체가 '열린 사회'의 장점을 보여주기도 해요. 홍콩은 무역, 관광, 여행 인프라, 증권 시장, 부동산 시장은 물론 영화 산업을 포함한 '소프트파워'에서도 성공을 거뒀어요.

그 밑바탕에 있는 게 탄탄한 인적 자원이에요. 이번 시위에서 나타나듯 홍콩 사회는 자유롭게 개방적이에요. 홍콩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근면하고 다문화에 열려 있을 뿐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경험이 풍부해요.

이번 홍콩 시위 때 일부에서는 "혹시 중국이 1989년 천안문 사태 때처럼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어요. 하지만 중국 정부는 홍콩 반환 후 최대 규모 시위에 굴복했어요. "중국 정부가 홍콩이라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함부로 억압할 수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와요.

좀 다른 시각도 있어요. 서구 식민지였던 마카오와 홍콩은 평화로운 절차를 거쳐 중국에 적법하게 반환됐어요. 대만은 달라요. 대만은 무엇보다 서구 열강이 중국에서 빼앗아간 식민지가 아니라, 중국 안에서 쪼개져나간 나라예요. 대만은 비록 작지만 중국과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어요.

그런 대만을 언젠가 중국에 통일시키는 게 중국 정부의 장기적인 목표예요. 그러려면 중국이 홍콩에 약속한 '일국양제'가 성공적으로 시행되어야 해요. 중국이 홍콩을 억압하면, 대만 내에 '중국과의 통일에 반대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테니까요.

홍콩 시위대는 세 가지 의미에서 국제사회의 박수를 받고 있어요.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자유를 지켰을 뿐 아니라 대만의 방패가 되어 줬어요. 차차 성장하고 있는 중국 사회의 중산층을 향해 '공산당 일당 통치 이외의 대안적인 정치 체제도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측면도 있죠.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 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