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음식] 조선시대 잔칫상 오르던 귀한 음식… 6·25전쟁 후 서민음식 된 이유는?
입력 : 2019.06.26 03:07
수제비
수제비〈사진〉는 값싸고 양 많은 대표적 서민 음식입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지긋지긋하게 먹었다"며 지금도 꺼리는 분들이 계실 정도죠. 하지만 6·25전쟁 이전만 해도 수제비는 잔칫날에나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수제비는 고려 때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추정합니다. 6세기 전반 발간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 기술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나오는 '박탁'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수제비의 원형입니다. 밀가루가 주재료인 수제비는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비싸고 흔찮은 음식이었어요. 밀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작물인데, 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은 추운 한반도에는 잘 맞지 않았어요. 국내 밀 수확량이 매우 적다 보니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사치품이었습니다.
수제비는 고려 때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추정합니다. 6세기 전반 발간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 기술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 나오는 '박탁'이 오늘날 우리가 먹는 수제비의 원형입니다. 밀가루가 주재료인 수제비는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에도 비싸고 흔찮은 음식이었어요. 밀은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작물인데, 여름은 덥고 습하며 겨울은 추운 한반도에는 잘 맞지 않았어요. 국내 밀 수확량이 매우 적다 보니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사치품이었습니다.
- ▲ /게티이미지뱅크
수제비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만들어졌습니다. 손을 뜻하는 '수(手)'와 접는다는 의미의 '접'이 합쳐져 '수접이'라고 부른 데서 비롯됐습니다. '운두병(雲頭餠)'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출간된 조리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운두병 조리법이 나옵니다. 밀가루에 다진 고기, 파·간장·기름·후춧가루·계핏가루 등을 넣고 되직하게 반죽해 닭을 삶아낸 국물에 이 반죽을 숟가락으로 떠 넣어 익힌 다음 그릇에 담고 닭고기를 얹어 먹는 고급 요리였습니다.
북한에서는 수제비를 손으로 뜯어서 만든다 하여 '뜨더국'이라 부릅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자랑스러운 민족 음식'을 보면 "뜨더국의 맛을 더 좋게 하려면 밀가루 반죽을 잘해야 하며 손에 물을 묻히면서 얄팍하게 늘이듯 뜯어 넣어야 한다. 또한 펄펄 끓는 장국에 뜯어 넣은 밀제비가 하나씩 익어서 떠올라야 하므로 계속 센 불로 끓인다. 그래야 장국이 걸쭉해지지 않으며 뜯어 넣은 떡이 매끈매끈하고 쫄깃쫄깃하다"고 요리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제비가 소박한 서민 음식이 된 건 6·25 이후 미국이 밀가루를 구호 물자로 무상 원조하면서부터입니다. 여기에 196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쌀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분식 장려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칩니다. 이즈음 수제비는 가을에 수확한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춘궁기(春窮期) 농가를 먹여 살리는 주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