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 독선은 악을 낳는다
장미의 이름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소설 '장미의 이름' 서문을 마무리하는 인용문입니다. 15세기 독일 신학자 토마스 아 켐피스가 남긴 말로 알려졌죠. 토마스 아 켐피스는 사제의 길에 들어선 이래 한 발자국도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며 후학을 양성한 사람입니다.
'장미의 이름'은 중세 한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다뤘습니다. 첫 사건이 벌어지고 때마침 수도원에 도착한 윌리엄 수도사와 시자(侍者) 아드소는 사건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하지만 이튿날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수도원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사건 실마리를 찾아가던 박식한 수도사 윌리엄은 장서관(藏書館), 즉 도서관에 의심의 눈길을 던지게 됩니다. 미궁과도 같은 장서관을 밤마다 더듬던 젊은 사제도, 젊은 사제의 행동을 문제 삼으면서도 장서관에 관심을 갖는 수도원의 다른 사제도 하나둘 목숨을 잃기 때문이죠.
- ▲ ‘장미의 이름’ 속 수도원 모델로 알려진 이탈리아 ‘산 미켈레 수도원’입니다. /위키피디아
움베르토 에코가 왜 장서관을 이야기 무대로 삼은 것일까요. 도서관은 인류의 거대한 지혜가 켜켜이 쌓여 있는 곳입니다. 에코는 소설에서 이 장서관을 "바그다드의 장서관 36개에 대항하는 기독교 세계의 유일한 빛"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렇지만 때로 빛은 사람 눈을 멀게 하기도 하죠. 지혜는 잘못된 신념을 낳기도 하고, 오도된 신념은 때로 거대한 악(惡)이 됩니다.
장서관에 잠들어 있는 책 한 권이 사태를 일으킵니다. 문제의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 2권 '희극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은 비극을 다룹니다. 에코는 '장미의 이름'에서 현실에는 없는 시학 2권 '희극편'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이야기 소재로 삼은 거죠.
장서관 사서 호르헤는 '웃음으로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웃음이 하느님을 믿는 자들에게서 경건함을 앗아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학 '희극편'은 웃음을 긍정합니다. 호르헤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구원을 받을 길을 포기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혜의 전당인 장서관에서 독선에 빠져 자신의 신념을 맹신하다가 '악'이 된 겁니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이 담긴 책이 나쁜 것은 아니죠. 에코가 서두에 쉴 곳으로서 '책이 있는 구석방'을 언급한 이유는 뭘까요. 소설에서 장서관은 살인 사건이 벌어졌던 공간입니다. 하지만, 결국 책이 있는 공간이 인류의 미래를 이끌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장미의 이름'은 단순한 추리소설이 아닙니다. 움베르토 에코가 곳곳에 그리스 철학, 중세 신학 같은 여러 학문으로 이어지는 단서를 숨겨놓았지요. 그 자체로도 장서관 목차 같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