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강대국·신흥강국 충돌위기 500년간 16번… 4번만 전쟁 피해가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 표현은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가 책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2017)'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고 있어요.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기원전 5세기로 안내할게요.
◇둘로 나뉘어 치고받은 그리스
기원전 5세기 그리스는 도시국가(폴리스)들이 똘똘 뭉쳐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바다에서는 아테네, 땅에서는 스파르타 주도로 페르시아군을 제압하죠.
그렇지만 황금기는 짧았어요.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나날이 발전하는 아테네에 스파르타가 위협을 느낀 것이죠. 스파르타는 페르시아와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수장으로 그리스 최고의 육상 전력을 자랑했어요.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국인 메가라, 코린토스가 아테네로부터 위협을 받자 아테네의 팽창을 막기 위해 전쟁을 결심합니다.
- ▲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패권을 두고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맞붙으며 일어납니다. 전쟁은 기원전 405년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그림)에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제압하며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죠.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새로운 강대국이 기존의 강대국에 도전하면서 결국 전쟁이 벌어졌다고 봤어요.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합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결국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그리스의 패권을 놓고 30년 가까이 혈전을 벌였어요. 이게 펠로폰네소스 전쟁입니다. 기원전 404년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하면서 긴 전쟁이 끝났어요.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아테네의 군사 지휘관이었어요.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24년에 패전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년간 아테네에서 추방당한 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전쟁 원인은 스파르타의 '공포'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이 '아테네의 성장에 대한 스파르타의 공포 때문'이라고 해석했어요. 스파르타는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아테네를 제거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두 국가는 결국 전쟁이라는 '함정'에 빠졌어요. 승전국 스파르타도 국력 소모가 컸어요. 그리스 곳곳에서 스파르타의 지배에 반발하는 반란도 일어났고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제 살 깎아 먹는 소모적인 내분에 지쳐갈 때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신흥 강국 마케도니아가 일어나 패권을 잡았어요.
◇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앨리슨 교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처럼 신흥 강국이 기존 패권국을 위협하며 성장할 때 양쪽이 무력 충돌하는 경향을 가리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표현을 썼어요.
그는 지난 500년 동안 '투키디데스의 함정' 상황이 16번 있었는데 그중 12번은 전쟁이 일어났지만 4번은 평화적으로 대립이 해결됐다고 지적합니다.
15세기 말 세계 제국과 무역을 두고 경쟁했던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교황이라는 중재자를 찾아 대결을 피했어요.
20세기 초 신흥 강국 미국과 기존 패권국 영국은 서로가 상대를 인정할 때 자국의 이익을 지킬 수 있다고 현명하게 판단했어요.
1940∼1980년대 세계 패권을 놓고 대립했던 미국과 소련은 서로가 가진 '핵무기'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전쟁을 삼갔어요. 2차 대전 후 영국·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EU)이라는 틀을 만들어 충돌을 피했고요.
이런 사례를 보면 신흥 강국이 등장한다고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앨리슨은 책에서 '미국과 중국 지도자가 과거의 성패로부터 제대로 배우기만 한다면 전쟁을 치르지 않고 양측의 핵심 이익을 충족시킬 실마리를 충분히 찾아낼 것'이라고 썼어요. 과연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