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경일의 심리학 한토막] 라이벌, 단기적으로 도움… 장기전에선 피로감 늘려 오히려 독

입력 : 2019.06.19 03:05

라이벌 의식

때로 사람들은 특정한 인물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그 상대방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데 이 라이벌 의식은 정말 큰 더 나은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을 줄까요?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입니다. 단기적으로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건데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벤저민 컨버스(Converse) 버지니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라이벌의 의미와 기능을 연구해 온 대표적인 심리학자입니다. 그가 2016년 내놓은 논문에 따르면 라이벌은 '업적 관심(legacy concern)'을 자극합니다. 업적 관심이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미래에 어떻게 기억되는가에 대한 관심을 뜻하죠. 라이벌이 없을 때보다 라이벌이 있을 때 향후 내가 남긴 업적이 어떻게 평가받게 될지를 더 신경 쓰게 되고, 그 결과 더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 위해 뭐든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일에서, 공부에서, 스포츠 경기에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오겠죠.
농구 경기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컨버스 교수는 라이벌 의식을 가지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행동이 늘어나는 것도 목격합니다. 라이벌 의식의 핵심은 '공격성'이거든요.

컨버스 교수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식축구팀을 고르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팀의 최고 라이벌팀을 이기기 위한 전략과 라이벌팀은 아니지만 다른 리그 강호를 이기기 위한 전략도 짜보라고 했지요. 그러자 사람들은 일반적인 강팀과 붙을 때보다 라이벌팀과 붙을 때 훨씬 공격적인 전략을 짰어요.

라이벌 의식이 강하면 공격적으로 목표를 추구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와 동시에 심사숙고하며 안정감 있는 전략을 추구하지는 못하는 거죠. 즉 라이벌 의식이 자극되면 '잠시 숨 고르며 차분히 기다려보자'는 의견보다는 '내친김에 치고 나가자'라는 의견이 더 강해진다는 겁니다. 살다 보면 잠시 기다리며 상황을 지켜봐야 할 순간도 있는데, 그러지 못해 실책이 생긴다는 겁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짧은 기간에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경우에는 라이벌이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이를테면 다가오는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것처럼요. 경쟁자 A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겠다며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죠.

그러나 수험 공부, 박사과정 공부 같은 장기전에서 이런 라이벌 의식은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기나긴 레이스 과정인데, 초반에 과도한 공격성을 보이면서 에너지가 먼저 소진될 수 있거든요. 정신적 피로감만 늘어나면서 정작 치밀한 계획은 세우지 못할 수 있어요. 라이벌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가 쌓여 집중력이 떨어질 수도 있고요. 장기전에서는 '이길 대상'인 라이벌보다 '본받을 대상'인 롤모델을 설정하는 게 더 도움이 되는 이유랍니다.

김경일·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