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경쟁자끼리도 번갈아 바람 막아주며… 에너지 95%까지 절약

입력 : 2019.06.18 03:05

도로 사이클

지난 16일 '투르 드 코리아 2019'가 5일간 605.2㎞를 달리는 대장정을 마쳤어요. 군산에서 출발해 천안, 단양, 삼척, 고성을 거쳐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마무리되는 코스였죠.

이런 형식의 장거리 도로 사이클은 1903년 시작된 '투르 드 프랑스'가 대표적입니다. 3주 동안 프랑스 전역을 돌며 경기를 하는데, 투르 드 코리아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했죠.

도로 사이클 대회에서는 도메스티크와 펠러톤이라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도메스티크(domestique)'는 프랑스어로 '하인'이란 뜻입니다. 선두에서 달리면서 맞바람을 막아주거나 경주 중 마실 것을 전해주는 등 팀 리더와 동료를 위해 궂은일을 도맡는 선수를 말합니다. 때로 팀 리더 바퀴에 구멍이 나거나 자전거가 파손되면 자기 자전거를 대신 내주기까지 합니다. 팀 리더가 우승하면 상은 팀 리더 개인이 받지만, 승리는 팀 전체의 것으로 간주합니다. 우승 선수는 자신의 상금을 도메스티크를 포함한 팀원들과 나눈답니다.
‘투르 드 코리아’에 출전한 선수들이 페달을 밟고 있어요. 도로 사이클 선수는 번갈아 선두를 맡아가며 체력을 아껴요. 적과도 협력하는 것이죠.
‘투르 드 코리아’에 출전한 선수들이 페달을 밟고 있어요. 도로 사이클 선수는 번갈아 선두를 맡아가며 체력을 아껴요. 적과도 협력하는 것이죠. /대한자전거연맹
'펠러톤(peloton)'은 경주에서 함께 몰려다니며 무리 지어 달리는 '집단'을 말합니다. 무리 지어 이동하는 군인을 펠러톤이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어요.

펠러톤을 이루는 이유는 달리는 그룹의 앞부분에 있지 않고 뒤나 가운데에 있으면 공기저항이 줄어 체력을 덜 쓸 수 있어서예요. 선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체력 부담을 나누는 것이죠. 철새들이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V자 형태로 무리 지어 날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펠러톤을 이뤄 달리지만 경기 후반이 되면 소수 선수가 선두 그룹을 형성합니다. 이들은 기록을 두고 경쟁하는 입장이지만 때로 협력하기도 해요.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자전거 140㎞ 경주에서는 골이 40㎞ 정도 남은 지점에서부터 영국, 미국, 네덜란드, 러시아 선수 4명이 선두 그룹을 형성했어요. 이들은 마지막 1㎞ 구간이 오기 전까지 번갈아 선두를 맡으며 힘을 아꼈죠. 최종 우승은 마지막 1㎞에서 치고 나간 네덜란드의 마리안 보스 선수가 차지했어요.

펠러톤으로 인한 에너지 절약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지난해 네덜란드 에인트호번 공과대학의 베르트 블로켄(Blocken) 교수 연구에 따르면 '펠러톤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선수는 혼자서 탈 때 들어가는 힘의 10분의 1 정도만 쓴다'고 합니다.

그는 120명 규모의 펠러톤을 만들어 실험했어요. 그 결과 앞에서 3분의 1 지점 가운데에서 타면, 혼자 탈 때 소비하는 에너지의 5~10% 정도만 소모하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시속 50㎞로 달리면서도, 선수가 쓰는 힘은 시속 12.5㎞로 달리는 수준이었죠.

도메스티크는 헌신을, 펠러톤은 협력을 보여줍니다. 개인 기록을 겨루는 스포츠이면서도 힘든 과정을 극복하고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팀원끼리 헌신하고 적과도 협동하는 것이죠.


최의창·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