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세 팀이 축구 시합하면? 재미난 상상으로 反戰 외치다

입력 : 2019.06.15 03:03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 展

해마다 6월이면 우리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와 더불어 다시는 끔찍한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하곤 하지요. 오늘 소개할 예술가는 전쟁을 일삼는 인간 사회에 저항했던 사회운동가였는데요. 덴마크 출신의 현대미술가 아스거 욘(Jorn·1914~1973)입니다.

욘은 인생 자체가 쉴 새 없이 전쟁과 얽혀 있었던 사람이에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태어났어요. 25세 되던 해에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겪었고, 곧 이어 전 세계가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갈라진 냉전의 시대를 맞았죠. 그는 끊임없이 전쟁을 야기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예술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오는 9월 8일까지 아스거 욘의 작품을 모아 '대안적 언어-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전'을 열고 있어요.

욘에게 예술은 혼자서 하는 창조 행위에서 끝나지 않고, 세상에 직접 개입하는 일이었죠. 그는 예술가들이 용감히 나서서,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자고 제안했습니다.

작품1 - ‘황금 돼지: 전쟁의 환상’, 1950. 캔버스에 유채.
작품1 - ‘황금 돼지: 전쟁의 환상’, 1950.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작품1은 우리나라에 6·25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 욘이 그린 그림입니다. 제목은 '전쟁의 환상'이래요. 거친 붓질에 검은색 윤곽선을 사용하여, 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이빨을 드러낸 짐승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욘은 1950년에 동료 예술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짐승으로 그려야 한다"고 썼어요. 이 그림을 그릴 무렵 그는 프랑스 파리에 있었는데,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쇠약한 상태였어요. 가난으로 인해 굶주린 데다 폐결핵까지 걸려서였죠.

욘은 6·25전쟁이 다른 지역으로 번져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원자폭탄으로 세계가 끝장날 수도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지요. 이 그림에서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버티며 울부짖듯 위기에 맞서고 있는 한 마리 짐승은 욘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작품2 -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962. 캔버스에 유채. 작품3 - ‘무제(데콜라쥬)’, 1964. 상자에 부착된 찢어진 포스터. 작품4 - ‘창조적 지성의 열정적 저항이여 영원하라’, 1968. 석판화.
작품2 -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1962. 캔버스에 유채. 작품3 - ‘무제(데콜라쥬)’, 1964. 상자에 부착된 찢어진 포스터. 작품4 - ‘창조적 지성의 열정적 저항이여 영원하라’, 1968. 석판화. /국립현대미술관
작품2는 누군가 이미 그려놓은 그림 위에 욘이 덧칠을 한 작품입니다. 욘은 파리의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그림을 사들여서 그 위에 낙서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림 속에 여인의 얼굴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어느 귀부인의 초상화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가가 흰색 물감으로 새를 그리고 보라색으로 바탕을 칠해서 사람 얼굴을 가진 새 그림으로 바꾸어 놓았어요. 원작을 훼손하며 덧칠을 하는 것은 매우 당돌한 행동이에요. 그러나 욘은 '그저 우아하기만 할 뿐 아무런 사회적 메시지도 지니지 못하는 그림이라면 예술가로서 거부한다'는 의지를 이 그림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어요.

작품3에서도 이런 반항적 의지가 엿보입니다. 이 작품은 종이 색깔이 알록달록하게 뒤섞여 있어 언뜻 보기에는 색종이를 찢어 붙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붙어 있었던 것을 떼어내면서 찢은 것이지요. 화면 위에 이것저것을 붙여 구성하는 것을 미술 용어로 콜라주(collage)라고 하는데, 반대로 떼어내면서 구성하는 방식은 데콜라주(de-collage)라고 불러요. 욘은 거리 알림판에 대자보나 포스터 같은 벽보가 붙었다 뜯겼다 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나 봐요. 보통 무언가를 떼어내고 찢어내는 행위에는 그게 싫다거나 불쾌하다는 표현이 담겨 있는데요. 여기에도 그런 의미가 깃들어 있습니다.

욘은 1968년 5월에 파리에서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는 격렬한 학생 시위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 시위는 이후 기존의 권위에 맞서는 커다란 사회운동으로 이어집니다. 이때 욘은 젊은이들을 응원하는 포스터를 4점 만들었어요. 그중 하나가 바로 작품4예요. '열정적 저항이여, 영원하라'라는 문구가 프랑스어로 씌어있습니다.
작품5 - ‘삼면축구’. 사진은 욘이 고안한 삼면축구 경기장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설치한 모습.
작품5 - ‘삼면축구’. 사진은 욘이 고안한 삼면축구 경기장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설치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을 나오면 보이는 축구장 모형(작품5)도 그의 작품입니다. 사각형이 아니라 육각형 모양의 축구장 모습인데요. 두 팀이 아닌 세 팀이 동시에 시합을 벌이는 이 경기장은 1961년경에 욘이 고안한 것이에요. 두 팀과 두 개의 골문이 아닌 세 개의 팀과 세 개의 골문이 있는 삼면 축구장이죠.

두 팀이 겨루면 서로가 팽팽하게 공격과 수비를 하게 되지만, 세 팀이 되면 공격보다는 방어에 더 치중하게 된다고 합니다. 제3의 요인으로 인해 새로운 힘의 관계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냉전 시기 미국 편과 소련 편으로 나뉜 두 가치 체계의 충돌을 완화시키려면 제3의 요인이 필요한데, 예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발명이지요.

삼면 축구는 개념으로만 존재하다가 2000년대 들어 세계 각국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행위예술로 경기를 선보였다고 합니다.

☞실험적 예술가들의 모임 '코브라'

사회 참여적 작품 활동을 한 욘은 여러 나라 예술가들이 교류하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1948년 아스거 욘은 코브라(CoBrA) 그룹을 설립했어요. 이 이름은 여기 속한 작가들이 활동했던 북유럽 3개 도시인 코펜하겐(Copenhagen), 브뤼셀(Brussel), 그리고 암스테르담(Amsterdam)의 영어 머리글자를 합쳐 만든 것입니다. 코브라는 비록 3년이라는 짧은 기간밖에 유지되지 못했지만, 예술가들이 공동으로 작업하면서 실험적인 생각을 펼쳤다는 점에서 중요하지요. 예술에서 형식보다 생명력을 강조했으며, 예술이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설 수 있도록 노력했죠.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