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노르망디 상륙 직후… 소련, 연합군 17배 병력으로 나치 공격

입력 : 2019.06.14 03:09

바그라티온 작전

1944년 6월 6일 나치 독일 치하에서 4년간 암흑기를 보낸 서유럽에 빛이 돌아왔어요. 사상 최대 규모의 상륙작전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실시된 디데이였어요.

날이 밝기 전 낙하산 부대가 캄캄한 어둠 속 비행기에서 뛰어내렸어요. 전폭기들이 독일군을 폭격했고요. 내륙에서도 특수부대와 프랑스 저항 세력이 힘을 합쳐 독일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이어 대규모 군대가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어요. 이날 황혼까지 연합군 병력 15만명 이상이 안전하게 프랑스 땅에 발을 디뎠어요.

나치는 격렬하게 저항했어요. 노르망디 일대에서 몇 주일이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죠. 이때 소련이 등 뒤에서 나치의 허를 찌릅니다. 오늘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소련군이 지금의 벨라루스 땅에서 나치를 상대로 벌인 '바그라티온 작전'에 대해 알아볼까요?

◇러시아 쏙 빠진 노르망디 기념식

지난주 프랑스 노르망디에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 정상이 모여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기념했어요. 노병들도 참석했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초대받지 못했어요. 소련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탓인지 러시아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에 냉랭한 반응을 보였어요.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에 투입된 소련군이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 탈환 작전에 나선 모습.
1944년 ‘바그라티온 작전’에 투입된 소련군이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 탈환 작전에 나선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서구 세계에서는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미군의 공적이 특히 컸다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어요. 영어가 국제사회의 공용어가 된 데다 영미 문화의 영향력이 세계 곳곳에 미치고 있어서죠. 할리우드 영화도 긴 세월 큰 영향을 미쳤고요.

하지만 실제로 나치 사상자가 가장 많이 나온 건 미국·영국이 주도한 서부전선이 아니라 소련군이 맡은 동부전선이었어요. 북극해에서 흑해까지 이어지는 긴 전선이었죠. 나치 군대와 연합군이 가장 대규모로 맞부딪친 전투도 동부전선에서 벌어졌어요. 전쟁의 판도를 바꿔놓은 전투였지요.

◇소련 국민 2700만명을 죽인 전쟁

2차 대전 초기에 나치는 파죽지세로 동유럽과 소련을 점령했어요. 하지만 1941년 겨울 소련군이 모스크바 코앞까지 밀려온 나치 군대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죠. 나치는 원래 단기간에 승부를 낼 속셈이었지만 장기전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소련군은 1942년 8월부터 6개월간 계속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나치를 꺾고, 1943년 7~8월 쿠르스크 전투에서 다시 한 번 대승합니다. 나치는 결국 퇴각하기 시작했어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진 지 보름 뒤 소련군은 전쟁사상 최대 규모의 육상 공격인 '바그라티온 작전'을 벌였어요. 당시 독일군은 북부군과 남부군이 무너진 상태였지만, 중부군만은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을 장악하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었어요. 소련군은 막대한 병력을 투입해 나치를 벨라루스 땅에서 몰아냈어요.

독일군은 바로 이때 2차 대전을 통틀어 최악의 패배를 맛봤어요. 학자에 따라 조금씩 추정치가 다르지만, 소련군 250만명과 독일군 100만명이 두 달 동안 싸운 끝에, 소련 측은 18만명이, 독일 측은 15만~45만명이 숨졌다고 해요.

궁지에 몰린 독일은 헝가리에서 소련군에 반격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1945년 봄 베를린을 점령한 것도 서쪽에서 진군해온 미군·영국군이 아니라 동쪽에서 밀고 들어간 소련군이었어요.

이렇게 나치와 싸우느라 소련이 치른 희생은 엄청났어요. 소련 국민 2700만명이 숨졌죠.

◇함께 싸워서 거둔 승리
소련이 바그라티온 작전으로 얻은 땅 지도
물론 소련 혼자 잘해서 연합군이 이긴 건 아니었어요. 1940년 나치는 프랑스 파리를 함락시킨 뒤 영국에 평화협정을 맺자고 했어요. 영국은 단호하게 거절했죠. 영국이 저항했기 때문에 히틀러는 2차 대전 내내 '등 뒤에 적을 둔 상태'로 소련군과 싸워야 했어요.

또 미군과 영국군이 소련에 지프 등 막대한 군수물자를 지원한 덕분에 소련군이 기동력 있게 독일군과 싸울 수 있었어요.

이처럼 나치를 상대로 함께 싸운 사이였지만, 미국이 이끄는 서방 세계와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점점 관계가 나빠지고 있어요.

이건 사실 안타까운 일이에요. 나치를 격파한 연합군의 후예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선조가 함께 거둔 위대한 승리를 다같이 기념할 수 있었다면 훨씬 의미 깊었을 텐데요.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