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승전국 수장이 겪은 2차대전,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았죠

입력 : 2019.06.12 03:00

[윈스턴 처칠이 쓴 '제2차 세계대전']
1953년 노벨문학상 받은 처칠 대표작
英 승리로 이끌었지만 전후 총선 패배… 종군기자 경력 살려 전쟁 회고록 작성

지난 3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영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쓴 '제2차 세계대전' 축약본을 선물했어요. 평소 트럼프 대통령은 존경하는 인물로 처칠을 꼽아왔죠. 지난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맞아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영 동맹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선물이었다는 해석이 나오죠. '제2차 세계대전'이 어떤 책인지 알아볼까요?

◇총리에서 잠시 물러나 다시 펜을 잡다

처칠은 1940년 총리에 취임하며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했어요. 이후 5년간 그는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도록 이끌었지요.

윈스턴 처칠이 1940년 총리 관저에 있는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윈스턴 처칠이 1940년 총리 관저에 있는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자 정력적인 작가이기도 했어요. /제국 전쟁 박물관(Imperial War Museums)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처칠 개인의 정치적 인생은 다시 요동치게 됩니다. 1945년 2차 대전 전후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독일에서 포츠담회담이 열립니다. 그런데 처칠은 같은 기간 영국에서 진행된 총선에서 복지정책 확대를 내세운 노동당에 패배했어요.

처칠은 1951년 다시 총리가 됩니다. 그는 정계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이 기간에 2차 대전을 회고하는 책을 쓰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1946년부터 집필한 '제2차 세계대전'이에요.

전쟁을 지휘한 승전국의 수장이 썼기 때문에 생생한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었죠. 당대의 공식 자료들과 개인적인 서한, 메모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이 보고 경험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어요. 영국 런던이 공습당할 때 느낀 두려움도 생생히 기록했죠.

처칠은 사실 정치가로 뜨기 전에 기자·작가로 먼저 유명해진 사람이에요. 쿠바 독립전쟁(1895~1898)과 2차 보어전쟁(1899~ 1902)에 종군기자로 참여했거든요. 제1차 세계대전 회고록 '세계의 위기', 자서전 '나의 전반생' 같은 논픽션 외에, 조상인 제1대 말버러 공작의 전기와 아버지인 랜돌프 처칠의 전기도 썼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53년 총 6권으로 완결됩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같은 해 처칠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역사적이고 전기(傳記)적인 글에서 보여주는 탁월한 묘사와, 고양된 인간의 가치를 옹호하는 빼어난 웅변에 이 상을 수여한다"고 밝혔어요.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그렇다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에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요? 처칠은 책 앞부분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고 밝힙니다.

그는 2차 대전의 가장 큰 원인은 나치 독일의 팽창정책이지만, 영국·프랑스 정치인들도 문제였다고 지적했어요. 전쟁 전 영국·프랑스 정치인들이 독일이 전쟁 준비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평화'를 내세워 국민을 안심시키고 표를 받는 데에만 몰두했다는 거예요. 전쟁을 일으킨 건 나치 독일이지만, 전쟁을 막지 못한 건 독일만의 책임이 아니었다는 분석입니다.

또 그는 전후 유럽의 평화 질서에 대한 구상도 책에 담았어요. 그는 '유럽이 끝없는 참상으로 빠져드는 걸 막기 위해선 유럽 가족 상호 간에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썼어요. 실제로 유럽연합(EU)이 창설됐고, 이후 회원국 사이에 전쟁이 없었어요. 그의 혜안이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지요.

물론 처칠이 회고록을 내면서 자신의 정치적 결단과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그의 글들에 무슨 문학적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어요. 그렇지만 그가 깊은 통찰력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역사의 현장을 기록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답니다. 그가 '제2차 세계대전'에 쓴 말입니다.

"전쟁에는 결단. 패배에는 투혼. 승리에는 아량. 평화에는 선의가 필요하다."


[처칠, 美 소설가와 동명이인]

"윈스턴 처칠이 윈스턴 처칠에게, 혼란을 막기 위해 앞으로 저는 필명을 '윈스턴 S 처칠'이라고 하겠습니다."

윈스턴 처칠과 같은 시기에 미국에는 동명이인 베스트셀러 소설가 윈스턴 처칠(1871~1947)이 있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한 '리처드 카블(Richard Carv-el)'이 대표작인데 200만부 넘게 팔렸어요. 당시 미국에서는 '윈스턴 처칠' 하면 이 소설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영국에 있던 처칠에게 미국 소설가에게 가야 할 팬레터가 날아들기도 했죠. 마침 소설 '사브롤라'를 연재 중이었던 처칠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중간 이름 스펜서(Spencer)에서 따온 S를 필명에 넣습니다.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