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17세기, 서양 지도 들여오자… 중국 중심 세계관 '휘청'

입력 : 2019.06.11 03:00

[역사 속 세계지도]
조선 태종 때 최초의 세계지도 만들어… 지도 중심에 중국이 크게 그려졌죠
아메리카 대륙은 발견 전이라 없어

25년 전 도난당한 조선시대 '만국전도(萬國全圖)'가 얼마 전 문화재청과 경찰의 노력으로 주인에게 돌아갔어요. 만국(萬國)은 세계의 모든 나라, 전도(全圖)는 전체를 그린 지도를 뜻해요. 그러니 만국전도는 세계의 전체를 그린 지도 즉 세계지도를 말하지요. 이 지도는 1661년 박정설이 그렸는데, 국내에 남아 있는 만국전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 것으로 알려졌어요. 흔히 조선시대 '3대 만국전도'라고 해서 '곤여만국전도'(보물 제849호) 박정설의 '만국전도'(보물 1008호) 하백원의 '만국전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85호)를 꼽습니다. 모두 서양식 지도를 베껴 그린 것인데요, 어떤 의미가 있기에 보물과 문화재로 지정된 걸까요.

'세계의 중심은 중국'

우리 역사에서 세계지도를 처음으로 제작한 것은 조선 초 태종 때인 1402년에 그려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입니다. 중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했는데요, 중국이 지도의 중심, 즉 세계의 중심에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중국과 조선은 다른 아시아 국가나 유럽·아프리카 대륙보다 커 보일 정도로 과장돼 있죠. 또 서양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이라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는 지도에 빠져 있어요.

[뉴스 속의 한국사] 17세기, 서양 지도 들여오자… 중국 중심 세계관 '휘청'
/그림=안병현
조선 초 공신 권근은 "지도를 보면 문밖을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알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들이 본 지도는 대부분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있는 이런 지도들이었어요.

조선 17세기부터 서양 지도 받아들여

유럽에서는 15세기 후반부터 대항해시대가 시작되면서 좀 더 정확한 세계지도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중국에서 1602년 나온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는 이런 추세를 반영하고 있죠. 당시 베이징에 머무르던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제작에 관여했어요. 이 지도에는 경도와 위도를 사용하였고,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도 나타나 있지요.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갖고 있던 기존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어느 정도 허물어지게 된 것이죠.

마침 중국 베이징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있던 조선의 이광정과 권희가 이듬해 우리나라에 가져왔어요. 이후 조선에서 여러 개의 '곤여만국전도'가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숙종 때인 1708년 만든 병풍 모양의 '곤여만국전도'입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있어요.

곤여만국전도가 물꼬를 트면서 다른 서양 지도도 조선에 소개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 문화재청이 25년 만에 찾아낸 '만국전도'는 문신 박정설(1612~?)이 남긴 것인데요, 이탈리아 출신 선교사 알레니가 1623년 편찬한 한문판 휴대용 세계지리서인 '직방외기(職方外紀)'에 실린 세계지도를 확대해 색을 입힌 겁니다. '북아미리가'(북아메리카) '홍해' '대서양' 등의 명칭과 남북회귀선 등 서양식 지도 표기법을 대부분 따르고 있어요. 땅은 붉은색 계열로 대륙별로 다르게 칠하고, 바다는 푸른색으로 칠하고 물결을 그려 넣기도 했지요.

조선 후기 실학자 하백원(1781~1844)이 그린 '만국전도' 역시 알레니의 지도를 바탕삼고 있습니다. 지도의 여백에 북극과 남극, 남북회귀선에 관한 설명, 오대륙에 관한 설명 등을 주석처럼 달아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만국전도와 곤여만국전도는 중국을 중심에 두고 한반도를 크게 묘사한 15세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달리 과학적이고 사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거든요. 당장 지도 가운데에 '중국'이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태평양이 있는 만국전도는 두 지도가 세상을 보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죠.


['만국전도' 그린 실학자 하백원, 물 끌어올리는 '자승차' 설계]


실학자 하백원은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양의 과학기술에 영향을 받아 수학·천문학·지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승차(自升車·양수기)와 자명종, 우리나라 지도인 동국지도 등을 발명하고 제작했습니다.

특히 물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오늘날의 양수기와 같은 기계 장치인 자승차를 설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1810년에 '자승차도해(自升車圖解)'에 자승차의 설계도와 제작 방법을 상세하게 기록했는데, 아쉽게도 실제 제작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