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2004년부터 동해서 석유 뽑아내… 2조3600억원 아꼈죠

입력 : 2019.06.06 03:00

[동해 가스전]
세계서 95번째로 '산유국' 인정받아
2017년 기준 하루 석유 185배럴 생산… 2021년이면 매장된 석유 떨어진대요

지난달 한 정치인이 우리나라를 두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을 썼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에 석유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세계 95번째로 '산유국'으로 인정받았어요. 우리나라 석유에 대해 알아볼까요?

동해 한가운데 있는 작지만 강한 유전

우리나라의 석유는 바다 한복판에서 나옵니다. 한국은 울산에서 남동쪽으로 약 58㎞ 떨어진 동해 상에 생산 기지 역할을 하는 '시추선'을 세우고 그 밑의 대륙붕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뽑아내고 있어요. '동해 가스전'이라고 하는데, 천연가스와 함께 '초경질유'라는 석유도 생산하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주로 이란에서 수입하는 석유 종류죠.

[재미있는 과학] 2004년부터 동해서 석유 뽑아내… 2조3600억원 아꼈죠
/그래픽=안병현
동해에서 석유를 찾는 작업은 1970년대부터 시작됐어요. 한국석유공사가 1998년 동해에서 가스층을 발견하고, 처음으로 석유를 소량이나마 뽑아 올리는 데 성공했어요. 그 뒤 경제성을 평가하고 생산 시설을 짓는 과정을 거쳐, 2004년 동해 가스전을 설치하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어요.

이후 동해 가스전은 2017년 기준 하루에 석유를 185배럴(약 3만L)씩 생산하고 있어요. 이 석유는 주로 플라스틱 같은 석유화학 제품을 만드는 원료로 쓰고 있어요. 생산량이 적어 수출까진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석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데 쓸 돈을 20억달러(약 2조3600억원) 이상 아꼈어요.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자연의 선물

자연에서 천연가스는 석유와 함께 만들어지는데, 액체인 석유에서 분리돼 따로 모여 있기도 하고, 석유에 섞여 있기도 해요. 동해 가스전은 천연가스와 석유가 뒤섞여 있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동해 밑바닥에 석유와 천연가스가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석유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환경에서 보존되는지 연구해, 동해에 유전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걸 알아냈어요.

석유가 모여있는 유전은 주로 볼록한 아치 형태를 하고 있으면서 아래쪽에 물이 고여 있는 지층에서 발견됩니다. 석유는 물보다 밀도가 낮기 때문에, 아래쪽에 물이 있으면 물과 섞이거나 아래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 위에 계속 떠 있거든요. 위에는 아치 형태 암반층이 있고, 아래는 물이 있는 지층에 석유가 갇혀 있는 거지요.

우리 과학자들은 이처럼 석유나 천연가스가 갇히기 쉬운 지층을 동해에서 많이 발견했어요. 석유공사 조사단이 시추선을 보내 끈질기게 탐색한 끝에 마침내 유전을 발견해낸 겁니다.

그렇지만 동해 가스전은 2021년이면 매장된 천연가스·석유가 모두 떨어져 문을 닫아야 할 형편입니다. 석유공사는 인근 해저를 더 탐색할 계획이라고 해요.

우리가 다른 유전을 찾아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해요. 유전이 생기는 조건은 엄청나게 까다롭거든요. 석유는 오래전에 살았던 동식물의 '사체'가 오랜 시간 땅속 깊은 곳에서 열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지는데, 유전이 생기려면 우연이 몇 겹이나 겹쳐야 하죠.

석유가 나오려면 무엇보다 동식물의 사체 등 유기물이 풍부하게 섞인 퇴적물이 넓고 깊게 쌓여 있어야 해요. 이 퇴적물이 마그마에 녹거나 지각 변동으로 뒤틀리기 전에 무사히 암석으로 변해야 하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퇴적암이 적당한 온도와 압력을 계속 받으면 석유가 생겨요. 그런데 유기물이 석유로 변한다 해도, 석유가 고이기 쉬운 사암 같은 암석층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석유를 덮고 가둬 둘 지층 형태를 만나지 못하면, '유전'이 되지 못하고 지각 속 어딘가로 스며들어 사라져 버리고 말아요.

요컨대 이 모든 조건이 전부, 그것도 한꺼번에 '딱!' 하고 맞아떨어져야만 유전이 생긴답니다. 동해의 유전은 자연이 이 작은 땅에 내린 아주 귀한 선물이에요.


[우리나라는 '석유 수출국']

땅에서 나온 석유는 여러 가지 성분이 섞여 있는 '원유' 상태예요. 원유를 높은 온도로 계속 가열하면 끓는점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물질을 하나씩 뽑아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자동차의 연료로 쓰는 휘발유는 약 40도, 경유는 220도부터 끓어요. 원유를 40도로 가열하면 휘발유가 끓어올라 기체가 돼 나오죠. 이 기체를 모아 식히면 순수한 휘발유만 모을 수 있어요. 같은 방법으로 220도까지 가열하면 경유만 모을 수 있어요. 그래서 석유 회사들은 거대한 '증류탑'에 원유를 넣고 가열해 여러 종류의 석유를 분리해 추출해낸답니다.

이런 식으로 원유를 분리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걸 '정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정제 기술을 자랑하는 나라로, 해외에서 원유를 들여와 석유로 정제해 다시 수출합니다. 그 규모가 무려 세계 6위랍니다.

2021년 동해 가스전이 문을 닫으면 우리나라의 '산유국' 지위는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석유 수출국'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김은영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