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6·25 때 철원에서 42일 전투… 국군과 싸운 中 피해 컸죠
中이 말하는 '상감령 전투'란?
최근 미국의 제재로 궁지에 몰린 중국 기업 화웨이의 회장이 '상감령(上甘嶺) 전투 때처럼 미국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어요. 이 말을 접한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요. 상감령 전투는 바로 6·25 때 국군과 중공군이 벌인 전투거든요. '십수억 중국 인민 애국심의 원천이 상감령'이란 말도 있어요. 어떤 전투였을까요?
◇1952년 가을, 김화읍 혈전
'상감령'이란 곳은 우리나라 지명사전에는 나오지 않아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오성산 남쪽인 저격능선과 삼각고지 사이의 고개를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이에요.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남침하면서 6·25전쟁이 시작됐어요.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유엔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했어요.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한때 서울을 다시 빼앗겼지요. 1951년 3월 서울을 재탈환한 뒤 1953년 7월 휴전이 이뤄지기까지 국군·유엔군은 북한군·중공군과 38선 부근에서 치열하게 싸웠어요.
이때 가장 큰 전투 중의 하나가 1952년 10월 14일부터 11월 25일까지 42일 동안 이어진 '저격능선 전투'였어요. 이 전투 기간 초기(10.14~11.5)에 저격능선 고개 너머 서쪽에서는 '삼각고지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중국은 두 전투를 통틀어 '상감령 전투'라 부르고 있습니다.
◇중공군 전사자, 국군의 3배
당시 전력을 증강한 중공군은 휴전회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방어진지를 강화했습니다. 이 '방어진지'는 한반도 허리를 관통하는 4000㎞ 길이의 대규모 땅굴 요새인 일명 '지하 만리장성'이었죠.
- ▲ /그림=안병현
중공군에 맞서 유엔군은 '쇼다운(Showdown)' 작전을 펼칩니다. 국군 2사단이 저격능선을, 미군 7사단이 삼각고지를 각각 공격했어요. 하지만 미군은 처음 11일만 참여했고 10월 25일부터는 국군이 양쪽에서 모두 전투 임무를 수행합니다.
40일 넘게 벌어진 처절한 전투는 국군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이 우리 측 공식 입장입니다. 남쪽 능선의 A고지와 돌바위능선을 지켜냈고, 군사분계선 설정에서 유리한 지형을 확보할 수 있었어요. 전사자는 국군 4830명, 중공군 1만4867명으로 중공군의 피해가 훨씬 컸어요.
◇'미국과 맞서 싸워 이겼다'고?
이때 북쪽 능선인 Y고지는 중공군이 점령한 채로 전투가 끝났지만, 결코 국군이 패한 전투라곤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전투는 당시부터 중국에서 '대첩(큰 승리)'으로 과장·미화됐어요. 대륙 곳곳에서 보낸 수많은 편지와 위문품이 땅굴 요새로 쏟아졌습니다. 1950년대 중국에선 '상감령 정신'이 일세를 풍미했는데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국과 인민의 승리를 위해 봉헌하는 의지'였다고 합니다.
우리 입장에서 더 황당한 건, 중국에서 '6·25는 미국의 침략에 맞서 조선(북한)을 도와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고, 상감령 전투는 그 전쟁에서 거둔 최대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앞에서 언급했듯 이 전투는 국군과 중공군의 전투였는데 중국 측은 "미국과 싸워 이겼다"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당시 중국은 막 대륙을 차지한 신생 국가였어요. 정치적으로 민중을 단합하기 위해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와 맞서 싸운 정의로운 전쟁'으로 선전·선동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랍고도 위험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국과 한국을 '적'으로 보는 냉전 시대의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화천의 호수 '파로호'… 중국 불쾌해하니 이름 바꾸자?
최근 강원도가 화천군에 있는 파로호(破虜湖)의 이름을 바꿀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와 논란이 됐어요. '중국 측에서 불쾌하게 생각한다'는 이유라고 하네요.
이 호수는 1944년 만든 인공 호수인 화천저수지였는데, 1951년 5월 국군 6사단이 이 일대에서 중공군을 격파했어요. 당시 중공군 사상자는 2만50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소식을 들은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란 뜻으로 '파로호'란 이름을 지어 줬어요. 이것을 이제 와서 바꾼다는 것은 '중국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