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혼자만의 휴식 시간? 누군가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입력 : 2019.06.01 03:05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 展

영국이 낳은 위대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당신 뜻대로'라는 희극에서 "세상은 무대이고 인생은 연극"이라고 전합니다. 사람은 태어나 세상이라는 무대에 등장해 누군가의 자식도 되고 연인도 되고 부모도 되며 여러 역할을 연기하다가 죽음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진다는 뜻이죠.

그런데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살던 500여 년 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배우로 살고 있어요. 현대인은 평균 9초에 한 번씩 카메라에 포착된다고 해요. 편의점에 가면 CC(폐쇄회로)TV가 우리를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있고, 길을 건널 때엔 여러 대의 자동차들이 블랙박스에 달린 카메라로 우리를 찍어대지요.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화면 속에 출연하는 배우인가 봅니다.

CCTV는 외딴길에서 안전 지킴이 역할을 합니다. 편의점 천장에 달린 CCTV는 도둑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요. 어딜 가나 점점 보안 기능이 강화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갈수록 더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에서 오는 7월 6일까지 '보안이 강화되었습니다'라는 제목의 전시가 열립니다. 이 전시에 참여한 9팀의 작가들이 만든 설치와 사진, 영상 작품들을 보면서 우리 함께 답을 생각해볼까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설치미술가이자 서예가 쉬빙(64)은 2017년 '잠자리의 눈'이라는 81분짜리 영화를 만들었어요. 잠자리의 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은 눈들이 벌집 모양으로 촘촘하게 꽉 채워져 있는데, 그 숫자가 1만개가 넘는다고 해요. 쉬빙이 말하는 잠자리의 눈이란 공공장소에 설치된 CCTV를 가리킵니다. 영화 '잠자리의 눈'은 오직 무인 카메라에 찍힌 영상만으로 이어 붙여 구성한 거예요.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 모두 실제 상황이랍니다.

사진1 - 쉬빙, ‘잠자리의 눈’, 2017.
사진1 - 쉬빙, ‘잠자리의 눈’, 2017. /코리아나미술관
사진1은 그 영상 속의 한 장면인데, 도로 위 CCTV에서 가져온 것 같아요. 도로용 카메라에는 자동차를 인식하는 기능이 있어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모두 네모로 표시해 놓았어요. 이 네모를 확인하면 자동차의 종류와 번호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도난 차량이나 범인의 차량을 찾는 데 도움이 되죠.
사진2 - 이팀, ‘Waypoint, Follow, Orbit, Focus, Track, Pan’, 2017.
사진2 - 이팀, ‘Waypoint, Follow, Orbit, Focus, Track, Pan’, 2017. /코리아나미술관
카멜레온 같은 변색 동물은 주변 환경과 똑같은 색으로 시시각각 자신의 피부색을 바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킵니다. 군대에서도 카멜레온처럼 주변과 비슷한 보호색 옷을 입어서 적군의 눈에 띄지 않게 위장하지요. 하지만 사람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탐색 카메라의 눈까지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탐색 카메라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이미지에 집중 초점을 맞출 테니까요. 그 예로 무인 항공기 카메라로 공중에서 찍은 사진2를 보세요. 물 위에 떠있는 사람의 모습인데, 어딘지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나요? 사람이 너무 선명하게 두드러져서 마치 공중으로 둥둥 떠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기계는 사람의 눈으로 경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는 걸 알 수 있지요.
사진3 - 아담 브룸버그 & 올리버 차나린, ‘정신은 뼈다’, 2013.
사진3 - 아담 브룸버그 & 올리버 차나린, ‘정신은 뼈다’, 2013. /코리아나미술관
사진3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시스템에 얼굴을 등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4개의 카메라 렌즈가 1초 간격으로 얼굴을 이미지 데이터로 잡아내요. 부분 이미지는 눈·코·입이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도 있지만, 여러 각도에서 여러 번 찍어 합치면 실제 사람과 똑같은 이미지로 저장해 둘 수 있습니다. 만일 이 데이터를 이용하여 나와 똑같은 가짜 사람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상상하면 섬뜩하지 않나요?

사진4 - 에반 로스, ‘자화상 2019년 3월 27일’, 2019.
사진4 - 에반 로스, ‘자화상 2019년 3월 27일’, 2019. /코리아나미술관
사진4는 내 머릿속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이미지예요. 어떤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자주 검색해보는 주제는 인터넷에 흔적이 남기 때문에 검색 기록만 살펴봐도 그가 어떤 분위기의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어요. 이 작품은 작가가 자신의 컴퓨터에서 한 달간 검색한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작가의 민낯 자화상이나 다름없답니다.
사진5 - 신정균, ‘스테가노그라피 튜토리얼’, 2019.
사진5 - 신정균, ‘스테가노그라피 튜토리얼’, 2019. /코리아나미술관

사진5는 여행 중에 우연히 찍힌 사진 한 장을 컴퓨터 화면에 띄워 보여주고 있어요. 요즘의 온라인 길 찾기 서비스를 활용해보세요. 세계 각국의 거리 이미지들을 저장해두고 있어서 금세 사진 속의 거리가 어느 도시의 어느 지점인지 찾아낸답니다.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작은 지도가 보이는데, 그 지도 상에서 사진 속 인물이 있는 위치를 점 찍어 알려주고 있어요. 이런 서비스 덕택에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여행 중에 길을 잃어버려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어요. 하지만 조금은 무섭고 불쾌하기도 해요. 보이지 않는 눈이 내 위치를 늘 추적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안전해지려고 만든 기계들이 오히려 우리를 감시하는 데에 쓰이는가 하면, 때로는 사생활을 침해하기도 한다는 걸 보여주는 전시랍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는 '빅 브러더'가 사람들을 감시하죠]

'보이지 않는 권력의 눈이 우리를 감시한다'는 생각은 조지 오웰(1903~ 1950)이 1949년에 쓴 소설 '1984'에 이미 등장합니다. 오웰은 이 소설에서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감시 체제를 '빅 브러더'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요. 빅 브러더는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일일이 지켜보고 그들의 생각까지 통제하려 하지요. '빅 브러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는 소설 속 문구가 유명하지요. 이 소설의 영향으로 빅 브러더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권력자를 가리키는 말이 됐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독재자의 상징이 되기도 했고요.



이주은·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