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트럼프가 日서 탄 군함, 진주만 공격한 항모와 이름 같아요

입력 : 2019.05.31 03:00

[트럼프와 아베의 3박 4일 정상회담]
트럼프의 일본 국빈 방문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건 안보 관련 행사였죠
北에 납치된 일본 피해자 가족 면담… 자위대 호위함에 美 대통령 최초 승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 28일까지 3박 4일간 일본을 국빈 방문했어요. 이 기간에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전통 의상 기모노만 안 입었을 뿐, 나루히토 일왕과 만나고, 스모 대회 우승자에게 특별 우승배인 트럼프배(杯)를 선사하고, 와규(和牛·고급 일본소고기)를 먹고, '절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골프도 쳤어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일정 중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안보 관련 행사였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피해자 가족들을 면담했어요. 일본에선 아주 중요한 정치적 이슈 중 하나죠. 그는 또 아베 총리와 함께 갑판만 개조하면 경항모로 개조할 수 있는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호위함에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승선했어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8일 아베 총리와 함께 일본 자위대 호위함 '가가' 격납고에서 연설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8일 아베 총리와 함께 일본 자위대 호위함 '가가' 격납고에서 연설했습니다. 일본 자위대는 이 군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할 계획입니다. /AFP 연합뉴스
한국에서는 아베 총리가 '극우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실제로 아베 총리가 펼치는 외교 정책은 이런 선입견과 꼭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여럿 있어요. 가령 아베 총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해 일본 경제를 개방했어요. 한국인을 포함한 해외 인력이 일본에 취업할 수 있게 문을 넓히고,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였어요. 재집권 후 6년 동안은 야스쿠니 신사도 참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베 총리가 정말로 강력하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부분도 있어요. 안보죠. 아베 총리는 2차대전 후 미군정 치하에서 만들어진 평화헌법을 고쳐 군사적으로 좀 더 활발한 역할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요. 일본은 아직도 개헌에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고, 개헌 절차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까다로워요. 그래서 아베 총리가 실제로 개헌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예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함께 탄 일본 호위함 가가호야말로, 아베 총리의 '플랜 B'일지 몰라요.

가가호는 갑판에서 헬리콥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헬리콥터 모함이에요. 일본 헌법에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본이 이런 배를 갖고 있는 게 과연 위헌인지 합헌인지 아슬아슬하지요.

일제가 1941년 하와이 진주만 미군 기지를 공습할 때 운용했던 항공모함 '가가'(왼쪽).
일제가 1941년 하와이 진주만 미군 기지를 공습할 때 운용했던 항공모함 '가가'(왼쪽). 헬리콥터 탑재형 호위함 '가가'는 2017년 취역했어요. /위키피디아
일본 정부는 가가호와 가가호 자매함인 이즈모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한 뒤, 미국 전투기 F-35B 42대를 들여와 운용할 방침이에요. 일본은 이미 강력한 이지스함대도 갖추고 있어요. 일본은 미국에서 F35A 전투기 102대를 도입할 계획인데, 그러면 미국을 제외하고는 최첨단 전투기인 F35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가 돼요. 일본이 지역 패권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행보지요.

이런 움직임이 과연 평화헌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만큼은 전폭적으로 일본 움직임을 지지하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동맹국이 미국에만 기대지 말고 '근육'을 키워야 한다고 줄곧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미국이 일본의 전력 강화 계획을 지지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미국이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지요. 그동안 중국이 빠른 속도로 해군력을 증강하고, 남중국해에 기지를 세우면서 아시아의 패권국가 자리를 굳히려 해왔거든요.

바로 이 지점에서 일본의 대외 정책이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갈라져요. 아베 총리는 '인도 태평양'이라는 지리적 개념을 만들었어요. 이 말을 미국이 받아들였죠. 가가호는 이미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항해하고 있어요.

한국은 베트남전에서 미군과 함께 싸웠고, 이라크, 아덴만 등에 군대를 파견했어요. 현재 한국군의 주력은 북한과 대치 중이죠. 사드 배치를 놓고 국내 갈등도 크고요. 또 한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각을 세우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중국은 일본에도 최대 무역 상대국이에요. 하지만 일본 정부는 미국이 중국과 마찰을 빚는다면, 기꺼이 미국 편에서 중국과 맞서려는 것으로 보여요. 일본은 '항행의 자유'를 확보한다는 명분 아래 호주, 프랑스, 영국 같은 미국의 우방국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요.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탄 배 이름이 하필 가가호라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예요. 1941년 진주만을 공격했던 일본 군함의 이름도 가가호였거든요. 그 배는 1년 뒤 미드웨이 해전 때 미군에 격침당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얘길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트럼프 대통령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해요. 이제 일본과 미국은 적국이 아니라 강력한 동맹국이라는 거지요.

한국의 입장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미·일은 전쟁을 뒤로하고 '적'에서 '동맹'이 됐어요. 하지만 한·일은 둘 다 미국의 동맹국이고, 민주적인 가치나 사회적인 목표, 라이프스타일도 비슷한데도 관계가 좀처럼 깊어지지 않고 있어요. 역사 문제가 계속해서 민감하게 부각되고 있지요.



앤드루 새먼 아시아타임스 동북아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