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사방 트인 1층, 벽 사이 공중 정원으로… 건축과 주변이 '연결'

입력 : 2019.05.29 03:00

아모레퍼시픽 사옥

건축은 도시의 풍경을 만듭니다. 오래된 도시든 근현대에 새로 만들어진 도시든 마찬가지입니다. 에펠탑 없는 프랑스 파리,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없는 뉴욕은 영 어색하죠.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건축 하면 아무래도 조선시대 궁궐인 경복궁과 창덕궁을 뽑는 경우가 많을지 몰라요. 하지만 2019년 현재까지 세워진 수많은 현대 건축물도 서울 풍경의 일부로서 큰 역할을 한답니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서울의 건물은 지난해 완공된 건물인데요. 영국의 스타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왼쪽 사진〉입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보통 사옥은 기업 관련자가 아니면 1층 로비조차 드나들기 부담스럽습니다. 외부인 출입에 민감한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지만 이 건물은 1층에 사방으로 문을 내고 보행자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 지하 음식점 아케이드를 찾아온 사람, 유명한 소문의 건물을 구경하러 온 사람까지 각자 다른 목적을 지닌 방문객으로 1층 로비가 북적거리지요.

문만 튼 것이 아니랍니다. 건물 곳곳이 큼지막하게 뚫려 있어요. 직육면체 상자 모양의 빌딩 한가운데, 5층 높이에 한옥의 중정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빈 공간을 만들어서 공중 정원〈오른쪽 사진〉을 조성했답니다. 7층, 17층에도 육면체의 한 면, 즉 외벽에 구멍을 뚫듯 공간을 마련해 정원을 만들었지요. 공중 정원을 세 개나 품은 독특한 디자인이죠.

사옥에서 일하는 임직원뿐 아니라 주변을 지나가는 방문자, 멀리서 조망하는 시민과 건축물을 공유한다는 생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연결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건축 철학을 온전히 구현한 모습입니다.

용산이라는 비싼 땅에 지은 건물인데 22층으로 비교적 낮은 높이도 특이합니다. 사옥 주변 주상복합건물은 40층이 훌쩍 넘거든요. 혼자 튀는 것보다 주변 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려는 시대에 중정이나 공중 정원 같은 '비어있는 공간'을 만들고, 더 높이 짓겠다는 욕심을 포기하는 건물. '좋은 건축'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조선시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응축했다는 흰색 건물은 밤이 되면 은은하게 빛을 머금고 주변 풍경에 스며듭니다. 마치 한강, 산, 주변 고층 건물을 모두 품으려는 것 같아요. 4호선 신용산역과 연결돼 있으니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한번 들러 보셔도 좋겠네요.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