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초기 음악가 박연, '전통 피리'로 길이의 단위 정했죠

입력 : 2019.05.28 03:00

[도량형의 역사]
세종대왕, 박연에 "길이 단위 만들라"
피리 '황종관' 이용해 '황종척' 만들어… 기장 낟알 100개 길이가 1황종척

지난 20일부터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뀌었다는 얘기 들으셨어요? 작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시간에 따라 변하는 국제 킬로그램 원기(原器·도량형의 표준이 되는 기구) 대신 불변하는 값인 상수(常數)를 이용해 질량을 측정하기로 했거든요. 킬로그램뿐 아니라 암페어(A), 켈빈(K), 몰(mol) 같은 단위들도 상수를 이용해 새롭게 정의했어요. 세계측정의 날인 지난 20일부터 세계적으로 적용됐죠.

이처럼 길이나 무게, 부피를 재는 단위를 도량형(度量衡)이라고 불러요. 길이를 재는 도(度), 부피를 재는 양(量), 무게를 다는 형(衡)을 합친 말이죠.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중국에 기원을 둔 척관법을 받아들여 도량형의 단위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길이는 척(尺·약 30㎝), 부피는 승(升·약 1.8L), 무게는 관(貫·약 3.8㎏)으로 따지는 도량형법이에요.

악기로 도량형의 기준을 삼다

그렇지만 시기와 국가에 따라 도량형을 바꾸기도 했지요. 고구려도 길이를 잴 때 척이라는 단위를 썼지만, 실제 길이는 중국보다 길었어요(35.51㎝). 자기네 실정에 맞춰 새로운 단위를 만들어 쓴 셈이죠. 이걸 '고구려척'이라고 해요.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초기 음악가 박연, '전통 피리'로 길이의 단위 정했죠
/그림=안병현
또 고려는 십지척(十指尺)이라는 단위를 썼어요. 19.42㎝를 1척이라고 봤죠. 척관법의 큰 틀은 중국에서 가져왔지만 우리 고유 도량형을 만들어 쓰기도 한 거예요.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은 음악가인 박연을 시켜 '황종척(黃鍾尺)'이라는 길이 단위를 새로 만듭니다. 조선시대에는 12음계를 썼는데 이때 기준 음이 되는 황종음을 내는 황종관을 기준으로 도량형 기준을 새로 정한 거예요. 황종관은 원통형의 관(管)인데 황해도 해주에서 나는 곡물 '검은 기장'의 낟알 90개를 늘여 놓은 길이였다고 합니다. 기장 낟알 100개 길이를 1황종척(약 34.48㎝)으로 삼았죠.

그 뒤로 황종관은 부피와 무게를 재는 기준으로도 사용됐어요. 황종관에 기장 알을 넣으면 1200톨이 찼어요. 이때의 부피를 '1약(龠)'으로 하고 10약을 1홉(合)으로 정했어요.

암행어사가 놋쇠로 만든 자를 들고 다닌 이유

도량형이 중요한 이유는 나라에서 세금을 걷을 때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못된 관리가 기준보다 큰 도량형기를 만들어 멋대로 세금을 잔뜩 걷은 뒤, 정해진 분량만 나라에 내고 나머지는 자기가 차지해선 안 되잖아요.

그래서 도량형기의 제작은 중앙관청 중 하나인 공조에서 담당했어요. 지방 고을은 관찰사 허가를 받아 수령이 감독해서 만들게 했고요. 개인이 만든 것은 수도인 한양의 경우 도량형을 담당하던 '평시서'라는 관청에서, 지방의 경우 지방 관청이나 군대가 주둔하는 진(鎭)에서 검사를 받았어요.

그런데도 불법으로 규정에 맞지 않는 도량형기를 만드는 경우가 있었죠. 그래서 왕이 비밀리에 지방에 보내는 암행어사는 역마와 역졸을 이용할 수 있는 마패와 함께 '유척'이라는 놋쇠로 만든 자를 가지고 다니게 했어요.

유척은 직육면체 모양이에요. '만기요람'이라는 책에 "암행어사는 유척을 2개 들고 다녔는데, 하나는 세금을 거둘 때 사용하는 도구가 법으로 정한 크기와 맞는지 측정하고 다른 하나는 형벌을 내릴 때 쓰는 도구가 법으로 정해 놓은 크기와 맞는지 측정하는 용도였다"고 적혀 있어요.

이처럼 도량형은 경제생활의 기본이자 한 나라의 통치 기준이었답니다.


[미터법, 광복 후부터 널리 쓰여]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미터법은 19세기 서양에서 확립됩니다. 길이는 m, 질량은 ㎏, 시간은 초(秒) 등으로 규정했죠. 대한제국은 평식원(平式院)이라는 도량형 담당관청을 설립하고 1905년 '도량형법'을 제정·공포하면서 미터법을 일부 도입했어요. 예를 들어 '1냥은 37.5g'이라고 새로 정의하는 식이었지요.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전통적인 척관법이 쓰였어요.

광복 후 정부는 도량형 통일을 위해 1959년 국제미터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계량법을 제정해 법정계량의 기본단위를 미터법으로 정했어요.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