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들이 모인 카네기홀 85주년 공연, 지금도 전설

입력 : 2019.05.25 03:03

클래식의 '어벤져스'

최근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 관객 수가 '아바타'를 넘어서며 국내에 개봉된 외화 중 가장 높은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가 됐어요. 무엇보다 거대 악의 세력에 맞서 힘을 합치는 수퍼 히어로들의 활약이 통쾌하죠. 예전에는 한 명의 주인공이 악당을 물리치는 영화가 많았는데, 요즘 관객들은 서로 다른 흥미로운 주인공들에게 골고루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에서도 종종 '어벤져스' 같은 공연이 이루어질 때가 있어요. 한 사람의 수퍼스타와 그를 보조하는 조연이 있는 공연이 아니라 무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중량감 있는 주연 연주자인 것이죠. 연주자 각자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와 커다란 존재감으로 팬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냅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고수들의 향연이었다고 오래오래 기억되는 공연이 있어요. 1976년에 열린 뉴욕 카네기홀 개관 85주년 기념 공연이랍니다.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 예후디 메뉴인,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등이 고루 참여했어요. 모두 지금까지 '전설'로 꼽히는 클래식 음악계 별들이었죠.

이들은 1891년 카네기홀 개관 기념 연주회에서 지휘를 맡았던 차이콥스키의 작품, 슈만의 가곡, 바흐와 베토벤의 관현악곡 등을 무대에 올렸어요.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연주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중 '할렐루야'였죠. 공연에 참가한 연주자들 모두가 합창에 가세해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청중은 더욱 즐거워했습니다.

1976년 뉴욕 카네기홀 개관 85주년 기념 공연은 레너드 번스타인(가운데) 지휘로 클래식 ‘전설’들이 서로 힘을 합쳐 펼친 무대였어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이작 스턴(바이올린),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예후디 메뉴인(바이올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피아노)가 생전에 연주하던 모습.
1976년 뉴욕 카네기홀 개관 85주년 기념 공연은 레너드 번스타인(가운데) 지휘로 클래식 ‘전설’들이 서로 힘을 합쳐 펼친 무대였어요.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이작 스턴(바이올린),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첼로), 예후디 메뉴인(바이올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피아노)가 생전에 연주하던 모습. /게티이미지코리아

여름 클래식 축제에서는 유명 연주자들이 한데 모여 이른바 '올스타' 공연이 열리기도 합니다.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축제는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입니다. 1994년 스웨덴의 사업가 마틴 엥스트롬이 만들었는데요, 획기적인 이벤트를 마련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축제 10주년이었던 2003년에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에마누엘 액스, 미하일 플레트뇨프, 예프게니 키신, 랑랑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바쁘게 활약하는 스타 피아니스트들을 모아 대형의 앙상블 무대를 꾸몄죠. 그랜드 피아노 여덟 대를 놓고 여덟 명의 피아니스트가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서곡,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등 다양한 작품을 연주했어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죠. 청중은 여덟 개의 피아노가 뿜어내는 거대한 음향과 함께 스타들의 정교한 호흡도 함께 즐길 수 있었어요.

2013년의 20주년 음악회도 이에 못지않았어요.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바이올리니스트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가 편곡한 쇼팽의 24개의 전주곡이었습니다. 피아노곡이 원곡인 이 작품을 다양한 악기가 함께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바이올린, 첼로 등의 솔로 곡, 현악 5중주를 위한 곡까지 다채롭게 구성했어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 다닐 트리포노프, 유자 왕, 카티아 부니아티시빌리(피아노), 르노 카퓌송(바이올린), 유리 바슈메트(비올라), 미샤 마이스키(첼로) 등이 1분 남짓한 쇼팽의 짧은 전주곡들을 저마다 매력적인 색깔로 해석해냈죠.

멤버 대부분이 솔로 주자들로 채워진 오케스트라도 있어요. 바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입니다. 이 오케스트라는 1938년부터 시작된 스위스 루체른 페스티벌 여름 축제의 중심 단체이기도 해요.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어왔던 클라우디아 아바도가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LFO)' 지휘자가 되면서 지금처럼 바뀌게 됩니다.

말러 체임버 단원을 중심으로 아바도와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눴던 첼리스트 나탈리아 구트만, 자비네 마이어(클라리넷), 알반 베르크 4중주단과 하겐 4중주단의 멤버 등이 여름 축제 기간 오케스트라를 위해 매년 모여듭니다. 평소 각자 음악 생활을 하다가 여름 축제 기간 중 약 3주간 집중적인 훈련을 통해 호흡을 맞추죠. 2014년 아바도의 타계 후에는 지휘자 안드리스 넬손스와 리카르도 샤이가 그 화려한 사운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타들이 모인 어벤져스 공연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확고한 자신만의 음악 세계가 있지만 효과적인 앙상블과 균형 잡힌 연주를 위해 서로 배려와 양보를 한다는 사실이죠. 능력을 뽐내기보다 타인의 음악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갖춘 진정한 대가들의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백만불 트리오'라 불린 연주팀

연주자의 면면이 너무 화려해서 '백만불 트리오'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던 팀이 있었죠.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피아노 트리오' 말이죠.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첼리스트 에마누엘 포이어만이 한 팀이었습니다. 이들은 1941년 베토벤과 브람스의 트리오를 녹음해 화제를 일으켰는데, 1942년 포이어만이 갑작스럽게 숨지면서 러시아 출신 첼리스트 그레고르 퍄티고르스키가 영입됩니다.

그 후 세 사람은 1950년 라벨과 차이콥스키의 트리오 음반을 내놓았는데 이 녹음은 현재까지도 최고의 해석으로 꼽힙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솔로 연주자로서의 개성이 마치 스파크를 일으키듯 짜릿하게 충돌하는데, 그 앙상블은 듣는 사람에게 뜨거운 흥분을 일으킵니다.


김주영·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