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경일의 심리학 한 토막] "공부해" 엄마 말에 "2시부터 할거야!" 대답하는 학생 심리는?

입력 : 2019.05.22 03:00

라운드 넘버 이펙트

몇 해 전 빅데이터 연구로 유명한 한 전문가가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데이터에 따르면 직장인들이 퇴사를 결심하는 '의외의' 순간이 언젠지 아세요. 바로 입사 '5, 10, 20주년'이 됐을 때입니다."

퇴사뿐 아니에요. 사람들은 어떤 숫자가 딱 떨어질 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요. 주가지수가 1990에서 1997로 올랐을 때보다 1997에서 2000이 됐을 때 언론에서 환호하는 것처럼요.

[김경일의 심리학 한 토막]
/게티이미지뱅크
이를 라운드 넘버 이펙트(round number effect)라고 합니다. 17이나 23 같은 수가 아니라 10이나 20처럼 똑 떨어지는 수일 때 새로운 행동을 하려는 현상이죠. 12월 29일, 30일, 31일까지는 별생각 없다가 1월 1일이 되면 무언가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도 큰 틀에서 라운드 넘버 이펙트입니다.

학생들은 공부 시간을 계획할 때 이런 현상은 겪어봤을 겁니다. 시계를 보니 1시 15분입니다. 이 경우 보통 '2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죠. 똑 떨어지는 숫자를 선호하는 겁니다. 별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 이런 효과가 더 강하겠죠.

그런데 사소한 조작으로 이런 현상을 조금 바꿀 수 있어요. 시계를 예로 들어볼게요. 시침밖에 없는 시계는 1시 20분이 얼추 되었을 때, 1시 19분인지 21분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분 단위는 그냥 넘겨 버리고 '2시 정각에 공부를 시작해야지' 같은 생각을 하죠. 정확히 몇 분인지 알 수 없으니 딱 떨어지는 2시를 공부 시간으로 잡기 때문입니다.

반면, 15분마다 표시가 되어 있고 시침과 분침이 다 있는 시계를 보는 사람은 2시가 아니라 1시 30분에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할 가능성이 더 올라갑니다. 분침이 정확하게 1시간 30분을 가리킬 테니까요. 디지털시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디지털시계로 '2시 9분'을 봤다면 '3시부터 공부할래'가 아니라 '2시 30분부터 할까?'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커져요.

한 주 단위도 비슷하요. 대부분 사람이 새로운 일은 월요일부터 시작하지, 수요일·목요일부터 하지 않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어른들이 자주 하는 말이 '다음 주부터 끊는다'입니다. 월요일부터 금연을 실천하겠다는 거지요. 일주일이라는 간격에서 월요일은 시작하는 날, 일요일은 마무리 짓는 날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작용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월 단위 달력 대신 하루 단위 일력을 쓰면 뜻밖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일력을 쓰면 내일 할 일과 오늘 할 일에 구분이 생깁니다. 반면 한 달 단위로 사는 사람들은 다음 달이 아닌 이번 주에 있는 날들이 모두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책상에 일력이 있으면 충실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시간의 눈금을 세밀하게 만들어 주는 것만으로 삶이 바뀌기도 합니다. 인지심리학에서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죠.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