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고양이 애지중지한 숙종, 식사도 나랏일도 '금손'과 함께
입력 : 2019.05.14 03:00
| 수정 : 2019.07.29 18:51
[조선시대 궁궐의 고양이]
숙종, 금색 고양이 금덕·금손 길러… 금덕이 죽자 장례까지 치러주었어요
금손은 숙종 세상 떠나자 굶고 울기만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이달 초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고양이 관련 박람회에는 사흘 동안 2만명 이상이 찾아오기도 했죠.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을 흔히 '고양이 집사'라고 부릅니다. 고양이의 수발을 드는 '집사(執事)'처럼 살게 된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조선 시대 왕 가운데도 '고양이 집사'가 있었다고 해요. 알고 계셨나요?
◇궁궐에서 고양이를 키운 숙종
조선 19대 왕 숙종(1661~1720)은 어느 날 궁궐 후원을 산책하다가 굶주려 죽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게 됐어요. 숙종은 금색 털이 난 그 고양이에게 금덕(金德)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데려와 길렀어요. 금덕이는 새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는데, 숙종은 장례식을 치러주고 새끼를 금손(金孫)이라 부르면서 정을 듬뿍 주었어요. 식사를 할 때면 곁에 앉혀두고 직접 먹이를 먹였고, 나랏일을 볼 때도 늘 곁에 두고 쓰다듬을 정도였지요. 심지어는 같은 이불을 덮고 잤다는 말도 있어요.
◇궁궐에서 고양이를 키운 숙종
조선 19대 왕 숙종(1661~1720)은 어느 날 궁궐 후원을 산책하다가 굶주려 죽어가는 고양이 한 마리를 보게 됐어요. 숙종은 금색 털이 난 그 고양이에게 금덕(金德)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데려와 길렀어요. 금덕이는 새끼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었는데, 숙종은 장례식을 치러주고 새끼를 금손(金孫)이라 부르면서 정을 듬뿍 주었어요. 식사를 할 때면 곁에 앉혀두고 직접 먹이를 먹였고, 나랏일을 볼 때도 늘 곁에 두고 쓰다듬을 정도였지요. 심지어는 같은 이불을 덮고 잤다는 말도 있어요.
- ▲ /그림=안병현
숙종이 '고양이 집사'였다는 것은 같은 시대 문인들이 기록한 글을 통해 남았어요. 실학자 이익의 '성호사설', 김시민의 '동포집', 이하곤의 '두타초' 등이죠. 김시민은 '이 고양이(금손)는 죽음으로 주인에게 보답했다'라고 썼어요.
◇낙타·송골매·원숭이 등 왕의 반려동물
기록에 따르면 숙종은 금덕이라는 고양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詩)를 남겼어요. 매사묘(埋死猫·죽은 고양이를 묻다)라는 제목인데, '고양이가 비록 사람에게 도움은 없으나 짐승일지라도 주인을 따를 줄 안다'고 썼지요. 숙종은 정쟁(政爭)의 한복판에서 고양이를 보고 위로를 얻었던 것으로 보여요. 당시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 차례나 정치판 주도 세력을 교체하는 환국(換局)을 유도하며 수많은 신하를 죽음으로 몰고 갔어요. 그 과정에서 왕비였던 인현왕후를 내쫓거나 장희빈(희빈 장씨)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숙종은 비정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하는데, 실제로 조선 시대에는 임금이 지나치게 동물이나 물건을 사랑하면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신하들이 반대하기도 했어요. 성종(1457~1495)이 낙타·송골매·원숭이를 키우자 신하들이 말렸다는 이야기가 실록에 기록돼 있어요. 성종은 원숭이가 얼어 죽으면 안 된다며 나랏돈으로 흙집을 지어주자고 제안하기도 했죠. 성종의 아들 연산군(1476~1506)은 내관이 자신이 기르던 고양이를 잃어버리자 의금부에 보내 매질을 하도록 했어요.
◇조선 시대 고양이 사랑
조선 17대 왕 효종의 셋째 딸 숙명 공주 역시 고양이 사랑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온종일 고양이만 끼고 있어 '동생은 벌써 아이를 가졌는데 너는 고양이만 돌보는구나'라고 꾸중하는 편지를 아버지 효종에게서 받기도 했어요.
정약용은 지역 수령들이 창고를 관리하는 방법으로 고양이 키우기를 권하기도 했어요. 조선 시대에도 '고양이를 기르는 집에는 쥐가 함부로 다니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졌다고 해요.
[조선 후기 화가 변상벽, 고양이 즐겨 그렸어요]
조선 시대에는 숙종이나 숙명 공주처럼 고양이를 애완동물로 대하거나 그림의 소재로 즐겨 그렸어요. 김홍도·신윤복·장승업 등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들도 고양이를 그렸거든요. 변상벽은 특히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려 '변고양'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그러나 고양이가 꼭 좋은 대접만 받은 것은 아닙니다. 조선 시대 민간요법에 고양이 고기가 쓸개 병에 좋고, 신경통에는 고양이 가죽이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있었어요. 이런 이유로 애꿎은 고양이가 희생되는 일도 많았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