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슬픔에 북받친 여주인공, 감정·기교 폭발… 관객은 '짜릿'
입력 : 2019.05.11 03:00
[오페라 속 '광란의 장면']
오페라의 백미는 여주인공의 아리아… 화려한 멜로디·고음이 청중 압도
인기 많아지자 정신착란 등 설정해 독백의 긴 아리아 부르는 장면 만들어
오페라의 여자 주인공을 가리켜 '프리마돈나'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첫 번째 여인'이라는 뜻이죠. 청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역할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유명한 비극 오페라에서는 마지막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세상을 떠나는 줄거리가 많아요. 역설적으로 우리는 프리마돈나의 죽음 을 보며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나 슬픔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려한 고음이 등장하는 아리아라고 할 수 있어요. 청중은 프리마돈나의 아리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듣고 싶어했지요.
하지만 정해진 줄거리가 있는데, 인기 있는 여주인공만 언제까지나 무대를 독차지하고 계속 노래 부르게 할 수는 없었어요. 19세기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이 묘안을 생각해냈어요. 여주인공이 갑작스레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환상을 본다는 식으로 줄거리에 이런저런 설정을 집어넣어 프리마돈나가 독백조로 길게 노래하는 장면을 넣은 거예요. 이를 '광란의 장면(mad scene)'이라고 부릅니다.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아름다운 멜로디와 화려한 고음이 등장하는 아리아라고 할 수 있어요. 청중은 프리마돈나의 아리아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듣고 싶어했지요.
하지만 정해진 줄거리가 있는데, 인기 있는 여주인공만 언제까지나 무대를 독차지하고 계속 노래 부르게 할 수는 없었어요. 19세기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이 묘안을 생각해냈어요. 여주인공이 갑작스레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나 환상을 본다는 식으로 줄거리에 이런저런 설정을 집어넣어 프리마돈나가 독백조로 길게 노래하는 장면을 넣은 거예요. 이를 '광란의 장면(mad scene)'이라고 부릅니다.
- ▲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왼쪽)와 '몽유병의 여인'에 나오는 프리마돈나는 독백 조로 계속 노래하는 광란의 장면을 통해 실력을 뽐냅니다. 작곡가들은 프리마돈나의 노래를 더 듣고 싶어 하는 청중을 고려해 줄거리를 바꿔가며 프리마돈나의 비중을 늘렸어요. /런던로열오페라하우스·트리에스테극장
대표적인 '광란의 장면'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인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 1848)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에서 나옵니다. 이 오페라는 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영주 엔리코는 여동생 루치아를 귀족 아르투로와 결혼시키려 하지만, 루치아는 원수 집안의 아들 에드가르도와 사랑하는 사이예요. 루치아의 오빠는 에드가르도가 변심한 것처럼 편지를 꾸며 루치아가 오해하게 만들어요.
마침내 루치아는 아르투로와 결혼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프랑스로 떠났던 에드가르도가 약혼식 중간에 나타나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알리죠. 그는 자신을 버린 루치아에게 실망해 사랑의 반지를 빼서 던져 버려요. 충격과 슬픔으로 정신 이상을 일으킨 루치아는 결혼식 피로연 도중 신랑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요.
루치아는 피가 묻은 잠옷 차림으로 하객들 사이에 나타나 사랑했던 에드가르도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긴 아리아를 부르다가 숨을 거둡니다.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여주인공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그리는 이 아리아는 20분 가까이 이어집니다. 특히 마지막 고음 부분에서 플루트와 이중주를 펼치면서 짜릿한 하이라이트를 만들어냅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매력적인 '광란의 장면'이 들어 있는 작품으로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1831)이 유명합니다. 스위스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몽유병을 앓고 있는 젊은 처녀 아미나의 이야기가 펼쳐져요. 아미나는 엘비노와 결혼을 앞두고 있어요. 그런데 엘비노를 짝사랑하는 여관 주인 리사는 아미나를 헐뜯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죠. 마침 몽유병에 걸린 아미나는 실수로 외간 남자의 침대에서 잠이 드는데, 리사가 이를 엘비노에게 알려 결혼이 취소됩니다.
여기서 아미나의 '광란의 장면'이 나옵니다. 방앗간에서 잠이 든 아미나가 몽유병으로 헤매는 장면을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목격하는 대목인데요. 아미나가 꿈을 꾸며 걷다가 위태로운 다리 위에 올라 이별을 슬퍼하며 '아, 믿을 수 없어라'라는 느린 아리아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리아를 듣고 엘비노는 오해를 풀고 그녀의 손에 결혼반지를 끼워주죠. 아미나는 분위기를 바꿔 '아, 기쁜 이 가슴'이라는 밝은 노래를 부릅니다.
프랑스의 작곡가 앙브로즈 토마(1811~ 1896)가 만든 '햄릿'(1868)에도 '광란의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오페라는 셰익스피어 원작의 줄거리를 살짝 비틀었어요. 원작에서는 햄릿이 목숨을 잃지만 오페라에서는 햄릿이 부왕(父王)을 살해한 삼촌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고, 왕위에 올라요. 햄릿의 사랑을 잃은 여인 오필리어가 탄식하며 부르는 광란의 장면이 특히 유명해요. 우아하면서도 극적인 구성으로 소프라노의 화려한 기교를 한껏 뽐낼 수 있는 곡이랍니다. 토마는 4막 대부분을 '광란의 장면'으로 꾸밀 정도로 이 부분에 정성을 기울였어요.
'광란의 장면'은 마치 여러 악기가 연주하는 협주곡 중 한 악기의 독주 파트인 '카덴차'처럼 한 사람의 성악가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교와 음악성을 뽐낼 수 있는 파트입니다. 작곡가들의 마법이 대단하지요?
[전설적인 프리마돈나,칼라스]
- ▲ /EMI 제공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사진)는 광란의 장면을 가장 잘 소화한 성악가였어요. 그녀가 부르는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몽유병의 여인'등은 지금까지도 능가할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죠. 호주 출신의 소프라노 조앤 서덜랜드(1926~2010)는 '햄릿'의 오필리아 역을 맡아 화려한 악상을 잘 살린 훌륭한 해석을 보여줘 오랫동안 칭송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