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 이야기] 강박증 치료 힘든 이유… 떨치려 할수록 더 떠오르기 때문
1987년 웨그너 교수의 실험서 검증
"흰곰 떠올리지 마라"하니 더 맴돌아… 다른 것 생각하거나 생각 미루면 효과
뭔가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지'할수록 계속 생각났던 경험이 있을 거예요.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저서 '꿈의 해석'에서 "억압된 것은 반복적으로 되돌아온다"고 했어요. 쫓아내려고 하면 꼭 돌아오고 마는 생각의 속성을 알아볼까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 생각나요
"'흰곰 떠올리지 않기'에 도전해봐. 그러면 그 짜증 나는 녀석이 매 순간 네 머릿속으로 파고들 거야." 도스토옙스키 소설 '백야(白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1987년 대니얼 웨그너 하버드대 교수는 과연 이 말이 사실인지 검증하기로 합니다.
웨그너는 대학생 34명을 각각 17명씩 두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A그룹에는 5분 동안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단어를 소리 내 말하되 '흰곰을 생각하지 마라'고 요청했어요. B그룹에는 5분 동안 똑같이 생각나는 단어를 소리 내 말하되 '흰곰을 생각해도 된다'고 했지요. 두 그룹 모두 흰곰이 생각날 때마다 벨을 누르도록 했어요.
연구 결과 흰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던 A그룹이 오히려 벨을 더 많이 눌렀습니다.
웨그너 연구팀은 이 현상을 '사고 억제의 반동 효과'라고 불렀어요. 이는 '흰곰을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동안 역설적으로 마음의 다른 한 부분에서는 흰곰을 떠올리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것에 집중하면 '흰곰 효과' 줄어
웨그너는 2011년 미국심리학회 연차대회에서 흰곰 효과를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어요. 대표적인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 흰곰 대신 다른 것을 떠올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흰곰을 생각하지 말고, 특정 자동차를 떠올려라"라고 하는 겁니다. 흰곰 대신 다른 집중할 대상이 생기자 '흰곰을 생각하지 않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졌다고 해요.
- ▲ /그림=박다솜
초콜릿을 끊지 못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을 끊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 '초콜릿이 생각나면 과일을 먹어야 한다는 걸 떠올려라'라고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겁니다.
둘째, '30분 후에 생각할 테야'와 같이 생각을 일단 미루기로 하는 겁니다. 연구에 따르면 흰곰이 퍼뜩 떠올랐을 때 '흰곰을 떠올리면 안 돼'라고 생각을 억제하기보다 '흰곰은 30분 뒤에 다시 떠올리자'라고 마음먹는 편이 흰곰이 덜 떠오른다고 해요.
◇걱정과 강박사고의 차이는?
어떤 사람들은 특정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고 호소해요. 예를 들어, 현관문을 제대로 잠그지 않았다는 생각, 밖에 나가면 병균이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고 염려하는 경우이지요. 이런 불안, 걱정에 지나칠 정도로 사로잡히는 경우를 '강박사고'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침투 사고'라고도 해요. 머릿속에서는 생각을 지우고자 하는데도 끊임없이 침투해서 괴로운 상태랍니다.
이런 강박사고는 한번 시작되면 잘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특히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불안해하지 말자!'라고 다짐할수록 앞서 말한 흰곰 효과가 나타나 그 생각을 없애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강박사고는 대개 강박적인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손에 병균이 묻어 있다는 생각에 수십 번 손을 씻는 식이죠.
일상적인 걱정과 강박사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차이점은 우리의 '반응'입니다. 강박사고는 걱정에 집요하게 몰두하게 되면서 앞서 말한 강박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평범한 걱정은 고민거리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행동을 하게 만들지는 않죠.
우리는 모두 일상적인 문제로 걱정을 합니다. 친구와 사이가 멀어지면 어쩌나, 성적이 떨어지면 어쩌나 같은 생각요. 이런 걱정·불안은 성가시긴 하지만 우리가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신호를 줍니다. 걱정이 찾아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걱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관건이랍니다.
☞강박행동엔 혼잣말이 도움 돼
문을 제대로 잠갔는지 염려하면 매번 확인하게 됩니다. 강박사고가 강박행동으로 이어지는 거죠.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강박사고가 강박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요. 문을 제대로 잠갔는지 걱정이 되더라도 실제로 확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한 번에 멈추기 어려우면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도 좋아요. 걱정이 두 번 들면 한 번만 확인하고, 좀 익숙해지면 걱정이 세 번 들 때 한 번 확인하는 식으로요.
혼잣말로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문이 잠기지 않았어도 요즘 세상에 도둑이 들지는 않을 거야' '집에 도둑맞을 귀중품이 없으니 괜찮아' 같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