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단장의 미아리 고개'… 6·25때 가족과 생이별한 아픔 담겨

입력 : 2019.05.07 03:09

4박자에 담긴 현대사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지난 2일 방송된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 마지막 회에서 우승자 송가인이 애절하게 부른 마지막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에 객석은 온통 울음바다가 됐어요. 그런데 1957년에 나온 이 노래가 무슨 사연을 안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 6·25 전쟁을 겪은 어르신들에겐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60년 넘게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사연을 모르는 사람이 많죠. 우리 가요 중에서는 이렇게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담고 있는 노래가 많답니다.

미아리 눈물 고개의 생이별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南侵)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어요. 낙동강까지 밀려서 후퇴했던 국군은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을 계기로 반격을 개시했지요. 이때 퇴각하던 북한군은 애국지사, 저명인사, 공무원 등 무려 8만명이 넘는 사람을 납치해 북쪽으로 끌고 갔어요. 이들을 '납북자(拉北者)'라 부릅니다.

기사 관련 일러스트
그림=안병현

노래 가사에서 '눈물 고개'라고 하는 미아리 고개는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과 돈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예요. 6·25 때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도봉산·의정부 방향 북쪽으로 가려면 이 고개를 지나야만 했습니다. 노래 제목은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입니다. '단장'이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일들을 모르고 '남자가 여자를 차버리고 떠나간 노래'라고 엉뚱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요, 전쟁과 납북으로 인한 생이별이라는 아픈 역사가 담겨 있는 노래입니다.

눈보라 휘날리는 흥남 부두의 금순이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 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1953년에 나온 '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는 1950년 12월의 '흥남 철수'를 배경으로 한 노래입니다.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하게 됩니다. 동부전선의 미 10군단 병력은 퇴로가 차단돼 함경남도 흥남항에서 바닷길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죠. 이때 10만명에 이르는 북한 주민이 미군 함정에 승선해 부산항으로 피란하게 됩니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당시 흥남 부두에서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통일이 돼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는 노래입니다.

이처럼 공산 치하에서 탈출해 남쪽으로 내려온 수백만 명의 북한 출신 주민을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란 뜻에서 '실향민(失鄕民)'이라 부릅니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들의 애통함이 담긴 노래 중의 하나가 평양의 명승지들이 등장하는 1958년 작 '한 많은 대동강'(야인초 작사, 한복남 작곡)입니다. "한 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삼백연 원안'의 숨은 뜻은 '300년 원한'

광복 이전 일제의 침략을 받던 시절에도 국민의 한(恨)을 어루만져 준 가요가 많았어요. 1936년에 나온 '목포의 눈물'(문일석 작사, 손목인 작곡)에는 '삼백연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라는 뜻 모를 가사가 있었는데요, 사람들은 금방 그 숨은 뜻을 알아차리고 실제로 노래할 때는 "삼백년 원한 품은…"으로 고쳐 불러 항일 의지를 드러냈다고 합니다. 망국의 비애를 담은 1928년 작 '황성옛터'(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당황한 총독부가 금지령을 내릴 정도였습니다.

☞트로트란?

트로트(trot)는 '4분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 대중가요의 한 장르'입니다. 20세기 초 서양에서 유행한 사교댄스의 연주 리듬인 '폭스-트로트'에 바탕을 두고 있어요. 일본에서 고유 민속음악에 폭스-트로트를 접목한 엔카(演歌)가 유행했고, 그 뒤 1920년대 한국 대중가요가 이 영향을 받았어요. 광복 이후 1970년대에 이르러 폭스-트로트의 4박자를 기본으로 하되, 강약의 박자를 넣고 독특한 '꺾기' 창법을 구사하는 독자적인 가요 형식으로 완성됩니다. '세미 트로트' '댄스 트로트' '록 트로트'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어요.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