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유럽엔 열등감, 아시아엔 우월감… 끊임없는 東進의 이유
입력 : 2019.05.03 03:09
러시아의 극동 정책
지난달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어요.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지요.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뾰족한 성과는 없었어요. 김정은은 비핵화와 경제협력에서 러시아가 자기 욕심만큼 편을 들어주지 않자, 일정을 줄이고 이른 귀국길에 올랐어요.
다만 러시아가 "6자 회담이 필요하다"고 말한 부분은 주목할 만합니다. 러시아가 동북아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다시 드러낸 거니까요. 왜 이러는 걸까요?
◇서유럽은 서진, 러시아는 동진
서양 문명은 대개 '서진(西進)'을 했어요. 남쪽 로마제국도, 북쪽 바이킹도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진격해 서유럽을 정복했지요. 로마가 무너지고 중세가 지나간 뒤 스페인과 영국이 차례로 새로운 패권 국가가 됐어요. 이들도 서쪽으로 나아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로 삼았죠.
다만 러시아가 "6자 회담이 필요하다"고 말한 부분은 주목할 만합니다. 러시아가 동북아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을 다시 드러낸 거니까요. 왜 이러는 걸까요?
◇서유럽은 서진, 러시아는 동진
서양 문명은 대개 '서진(西進)'을 했어요. 남쪽 로마제국도, 북쪽 바이킹도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진격해 서유럽을 정복했지요. 로마가 무너지고 중세가 지나간 뒤 스페인과 영국이 차례로 새로운 패권 국가가 됐어요. 이들도 서쪽으로 나아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로 삼았죠.
- ▲ 러시아는 수백 년 동안 우랄산맥 동쪽으로 영토와 영향력을 늘려 나갔습니다. 차르 알렉산드르 2세(왼쪽)는 연해주를 차지하고 부동항(不凍港)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합니다. 스탈린(가운데)은 북한 수립을 지원했죠. 푸틴 대통령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고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위키피디아·AP 연합뉴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이뤄진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동진을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지명 자체가 '동방의 지배자'라는 뜻이에요. 러시아가 극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해온 도시죠. 학자들은 러시아의 특징으로 다음 세 가지를 꼽고는 합니다. '서유럽에 대한 열등 의식' '아시아에 대한 우월 의식' '세계를 구제한다는 구원 의식'입니다. 열등감과 우월감 그리고 자신을 구원자로 여기는 러시아의 극동 정책은 침략과 약탈을 동반했고, 한반도 역시 이를 피하긴 어려웠어요.
◇러·일전쟁으로 물러났다가 2차 대전 때 복귀
러시아는 1905년 러·일전쟁에 패배해 타격을 입습니다. 만주와 한반도에 영향력을 계속해서 확대하려고 힘썼건만 새롭게 떠오른 일본에 막혀 좌절한 거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세계 최초 공산주의 국가 소련이 들어섭니다. 소련은 다시 극동 진출을 노렸어요. 1939년 일본을 상대로 몽골과 만주국 국경지대인 할힌골(일본 이름 노몬한)에서 일본 관동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둡니다. 당시 소련군을 지휘한 장군이 게오르기 주코프(Zhukov)예요. 그는 2차 대전 때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냈어요.
할힌골 전투는 아시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일본은 몽골과 러시아 대신 동남아와 태평양으로 눈을 돌립니다. 반면 소련은 이 전투 승리로 다시 극동에 진출할 교두보를 얻었고요. 이 승리를 발판으로 소련은 2차 대전 막바지에 일본군을 제압하며 만주와 한반도에 진출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북한에 공산국가가 들어서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어요. 이후 냉전시대 내내 공산주의 국가의 대부로서 북한을 계속 받쳐줬어요.
그렇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다시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약해집니다. 자국을 수습하기도 바빠, 남의 나라 일에 참견할 처지가 못 됐거든요. 이후 20년 가까이 러시아 대신 중국이 북한의 구명조끼 역할을 했어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일·중·러·남·북이 모여 앉은 6자 회담에서도 러시아는 최소한의 역할에 그쳤어요.
◇푸틴이 꿈꾸는 세계는?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뒤 러시아는 과거의 영광을 어느 정도 되찾았습니다. 한국(G11)에 이어 세계 12위 경제 대국이 됐죠. 푸틴은 다시 위풍당당하게 국제 무대를 누비며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늘리려 하고 있어요. 그는 지난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했어요. 그는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목소리를 키우고 싶어 해요. 미국과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요. 핵무기를 내세워 북한 체제를 유지하려는 김정은과 일정 부분 이해관계가 일치하지요.
다만 이번 회담에서 드러났듯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급속히 진전되기는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와요. 러시아도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지요.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미국이 '아시아 지역 방어'를 명분 삼아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강화할 거예요. 이건 러시아 국익에 '마이너스'죠. 또 러시아는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라, 내놓고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걸 인정하기도 어려워요. '푸틴이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그래서 나온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