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운동 선수의 본능적 반응? 연습으로 뇌에 저장된 '절차 기억' 덕분

입력 : 2019.04.24 03:00

운동과 기억

날씨가 좋아지면서 야외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요. 축구나 골프처럼 서로 실력을 겨루다 보면 '좀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운동을 잘하려면 우선은 '기억'을 해야 합니다. 축구를 예로 들어볼게요. 축구공 차는 연습을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어떻게 해야 공을 잘 찰 수 있는지 생각하면 이 요령이 먼저 뇌에 '정보 기억'으로 저장되기 때문이에요. 공이 어느 정도의 속도로 날아오니 디딤발은 어디에 두고, 공을 차는 발의 힘은 어느 정도로 줘야 하는지 등을 생각하고 기억하는 거지요.

그런데 실제로 축구 경기를 하면 어떻게 해야 공을 잘 차는지 판단할 시간이 없어요. 본능적인 것처럼 공을 차게 됩니다. 이건 '정보 기억'을 뇌에서 기억해내기도 전에 다른 형태로 저장된 운동 기억 뇌신경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에요. 공을 차는 동작을 반복하면 같은 뇌 부위가 계속 자극받아요. 이때 뇌 세포에 운동 기억 뇌신경 회로가 생겨나는 거예요. 이런 기억은 앞서 얘기한 정보 기억과는 달리 몸의 기억 즉, '절차 기억'이라고 불러요.

[나해란의 뇌과학 교실] 운동 선수의 본능적 반응? 연습으로 뇌에 저장된 '절차 기억' 덕분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몸으로 익힌 '절차 기억'은 정보 기억보다 뇌에 훨씬 깊이 저장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잊히지 않는다고 해요. 수영할 때 처음엔 계속 물에 가라앉지만 어쩌다 몸이 물에 뜨게 되면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뜰 수 있게 되지요? 이미 뇌의 기저핵에 '물에 뜨기'가 절차 기억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몸으로 익히는 기억이다 보니 운동 원리를 몰라도 배우는 데 지장이 없어요. 예를 들어 어떤 어른은 골프 스윙을 할 때마다 방법은 연구하면서 쩔쩔매는데, 이론을 전혀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오히려 곧잘 스윙을 하죠. 몸이 기억만 하면 이론이나 원리를 몰라도 계속 같은 동작을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기술을 완벽하게 익힌 스포츠 선수들도 초보자 같이 실수를 할 때가 있어요. 경기 중에 극심한 압박이 생길 때지요. 심리적으로 부담이 크면 '절차 기억'도 마비가 됩니다. 예를 들어 평소 본능적으로 골 냄새를 맡아 골을 넣어왔던 축구 선수도 결승전처럼 큰 무대가 되면 결정적 찬스에서 헛발질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긴장을 하면 생각이 많아지면서 뇌에 새겨진 운동 기억을 한 단계 한 단계 분석하게 된다고 해요. 그럼 자연스럽게 몸에 밴 완벽한 동작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초보자처럼 서툰 동작이 나올 수 있는 것이죠. 특히 골프처럼 미세한 균형이 중요한 운동은 잘 치려고 생각을 하다 보면 스윙이 무너지기 쉽지요.

이제 운동 잘하는 방법을 요약해 볼게요. 먼저 요령을 찾아내 그 동작을 무수히 반복합니다. 반복 연습을 하면서 이 자세나 방법이 몸에 익죠. 즉 뇌신경 회로에 저장돼 필요할 때 자동적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실제로 경기를 할 때는 '반드시 잘해야 해'란 부담을 버리고 편안히 경기에 집중합니다. 그럼 우리 뇌가 알아서 그간에 연습했던 최고의 기술을 기억해 펼쳐줍니다.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