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日 자본주의의 아버지', 한반도 침탈에 사용된 철도 깔아

입력 : 2019.04.23 03:00

[시부사와 에이이치]
日, 1만엔권 새 얼굴 시부사와 선정… 증권거래소·500여개 회사 세우며 일본 경제의 기틀 세운 인물이에요
반면 우리나라서 경인선·경부선 깔아 일제의 농·수산물, 광물 수탈 도왔죠

일본이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에 맞춰 1만엔, 5000엔, 1000엔 지폐에 들어가는 인물을 모두 교체하기로 했어요. 그중에서도 최고액권인 1만엔에 새로 들어가는 인물이 주목되는데,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1840 ~1931)입니다.

시부사와는 일본 최초의 은행과 증권거래소를 설립했고, 방직·철도·비료·호텔 등 500여개 회사를 세워 일본 경제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에요.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나는 시부사와에게서 경영의 본질을 배웠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일본인들은 '화폐에 얼굴이 들어갈 만한 훌륭한 인물'이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식민지 침탈에 앞장섰던 시부사와의 다른 얼굴이 더 알려져 있어요.

"경인선·경부선은 일본의 국책 사업"

"여러분, 이 철도는 장차 한국 발전의 선도자가 될 것입니다."

1900년 11월 12일 서울 남대문정차장(지금의 서울역)에서 열린 성대한 경인선 철도 개업식에서 한 일본 신사가 "철도는 문명 개화와 산업 개발을 가져올 것"이라며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어요. 경인철도합자회사와 경부철도주식회사의 사장, 바로 시부사와 에이이치였습니다.

[뉴스 속의 한국사] '日 자본주의의 아버지', 한반도 침탈에 사용된 철도 깔아
/그림=안병현
시부사와는 당시 대한제국의 경인선·경부선 철도 부설에 발벗고 나선 인물이었습니다. 개업식 연설처럼 정말 '한국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시부사와는 연설이 끝난 뒤 일본인만 있는 자리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개업식을 성대하게 했던 건… 앞으로 건설할 경부선 철도를 성원하고 주식 모집을 돕기 위해서였소."

시부사와의 주도로 이뤄진 경인선(서울~인천·1897~1900)과 경부선(서울~부산·1901~1905) 철도 부설은 철저히 '일본의 국가 이익'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끊임없이 물자를 공급받는 동시에 정치·경제·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일본 열도에서 가장 가까운 아시아 대륙'인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도 부설이 필수였기 때문이죠.

한반도 침략·수탈의 선봉 역할

일제는 경의선·경부선·경원선·호남선·경경선(지금의 중앙선)을 비롯해 총길이 6400㎞에 이르는 철도를 한반도에 놓았습니다. 바로 그 철도망을 통해서 강압적 통치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확산하고, 엄청난 양의 농림·수산물과 광물을 일본으로 반출했어요.

결국 철도 부설은 일제의 한반도 침략과 수탈을 위한 틀과 교두보를 만드는 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다른 일본인이 아직 엄두를 못 내던 이 일을 앞장서서 추진한 사람이 시부사와 에이이치였습니다. 시부사와는 "도덕을 선행해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는 '도덕 경영'을 설파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 도덕이란 것은 '국내용 도덕'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일제는 경인선·경부선 철도 부설 과정에서 철도용지를 헐값으로 빼앗고 주민을 철도 공사에 동원했는가 하면, 반발하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탄압하는 일을 숱하게 일으켰기 때문이에요.

근대화의 상징으로 일본에서 추앙받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침략의 선봉'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본의 근대화는 그들로부터 침략당한 이웃 나라의 부당한 희생 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시부사와의 얼굴이 일본 지폐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1984년 이전 일본 1000엔 지폐에 그려졌던 인물이 생각난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였답니다.


[철도, '남녀칠세부동석' 관념 깨]

학자들은 "철도는 20세기 초 한국인에게 흉기(凶器)인 동시에 이기(利器)였다"고 말합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수탈하기 위해 만든 것이 철도였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새로운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는 통로이기도 했다는 거예요. 하루를 자시(子時)부터 해시(亥時)까지 12개 단위로 나눠 생각하던 시간 관념은 철도 때문에 시(時)와 분(分) 단위로 바뀝니다. 남녀노소가 한 칸에 섞여 앉다 보니 '남녀칠세부동석' 관념이 깨지는 새로운 사회적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또 3·1운동은 철도 노선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갔지요.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