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스웨덴·미국 서로 "어산지 넘겨줘"… 깊어지는 英의 고민

입력 : 2019.04.19 03:09

체포된 어산지

줄리언 어산지

내부 비리를 파헤쳐 세상에 폭로하는 사람을 '내부 고발자(whistle blower)'라고 하죠.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란 뜻이에요. 역대 최고 논란을 부른 내부 고발자 줄리언 어산지(Assange·48)가 큰 곤경에 처했어요. 어산지는 호주 기자이자 아이슬란드에 본부를 둔 단체 '위키리크스'를 이끌어 온 활동가예요. 해킹으로 확보한 각국 정부의 기밀 정보를 공개하는 단체지요.

그는 지난 7년간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지난 11일 영국 경찰에 체포됐어요〈작은 사진〉. 그동안 어산지를 보호해 온 에콰도르 정부가 어산지 보호 조치를 해제한 직후였어요.

어산지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미국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해요. 영국은 "미국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해 어산지를 붙잡았다"고도 했어요. 미국 정부는 위키리크스 때문에 잇달아 곤욕을 치렀어요.

미국 정부는 어산지가 미국 외교 전문을 훔쳐서 폭로했다는 혐의로 기소한 상태예요. 미 국방부 컴퓨터를 해킹하려고 모의했다는 혐의도 있어요. 과거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위키리크스 때문에 망신을 톡톡히 당했죠. 러시아 정보 당국이 미국에 불리한 정보를 빼내서 폭로하도록 어산지를 부추기고 이용했다는 의혹도 있어요. 수상쩍게도 그동안 러시아는 한 번도 위키리크스의 타깃이 된 적이 없지요.

위키리크스 그 자체는 저널리즘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어요. 저널리즘은 각종 정보를 일정한 맥락에 따라 보여주고, 그 정보를 어떻게 해석할지 시각을 제시해요. 취재 대상에게 반론할 기회도 주고요. 위키리크스는 편집을 거치지 않고, 반론권도 주는 법 없이 데이터를 그대로 공개해요.

또 저널리스트들은 취재 윤리를 지켜야 해요. 돈을 주고 정보를 사거나 훔쳐선 안 되죠.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어떤 원칙에 따라 정보를 수집하는지가 불분명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정보들은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관한 한 공익적 기능도 했어요. 기자들이 추가 취재를 통해 후속 보도를 쏟아낼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했죠.

11일 영국 경찰에 체포된 줄리언 어산지는 2010년 스웨덴에 갔을 때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이듬해 영국에서 가택연금 됐어요. 오른 발목에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요. 그는 자유와 진실을 지키기 위해 강대국에 맞선 영웅일까요? 아니면 독선에 빠진 범죄자일까요?
11일 영국 경찰에 체포된 줄리언 어산지는 2010년 스웨덴에 갔을 때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이듬해 영국에서 가택연금 됐어요. 오른 발목에 전자발찌를 차고 있어요. 그는 자유와 진실을 지키기 위해 강대국에 맞선 영웅일까요? 아니면 독선에 빠진 범죄자일까요? /AP 연합뉴스
어산지는 한때 잘생긴 은발 청년이었어요. 하지만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보낸 마지막 나날은 그리 멋지지 않았다고 해요. 에콰도르 대통령은 에콰도르 대사관이 어산지를 7년이나 숨겨줬는데도 어산지가 대사관 직원들을 괴롭히고 대사관 벽에 똥을 발랐다고 주장했어요. 어산지는 영국 경찰에게 붙들려 몸부림치고 고함지르며 끌려 나왔어요. 어산지가 그동안 불의에 맞서는 십자군 행세를 해 온 것을 생각하면 영 걸맞지 않은 모습이지요.

어산지는 2006년 위키리크스를 세웠어요. 2010년 미군 헬기가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사살하는 영상을 공개해 유명해졌죠. 하지만 그가 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사인지, 세상의 관심을 병적으로 추구하며 불법 해킹 등을 일삼는 악당인지는 논란이 있어요.

그는 2010년 스웨덴을 강연차 방문해 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또 다른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어요. 애초에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한 것도 그래서였지요. 어산지가 대사관에서 보인 행태는 어산지가 받고 있는 각종 혐의에 무게를 실어주지요.

영국 정부가 당면한 문제는 '이제 어산지를 어떻게 할 거냐'예요. 미국은 어산지를 넘겨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영국은 미국과 정보 공유 협정과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고 있지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유럽연합 인권조약에 따라 정보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할 의무도 지고 있어요.

영국 정부 입장에선 어산지를 미국에 넘기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것 같아요. 영·미 동맹도 강화할 수 있고, 재판 과정에서 생길지 모르는 온갖 소동에서도 비켜서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영국 내부에서는 어산지를 체포한 게 표현의 자유와 국제법을 둘 다 침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요. 어산지를 넘기는 건 영국 정부가 의무를 방기하는 게 될 수 있죠.

어산지가 영국 법정에 서건, 미국 법정에 서건, 또 어떤 판결이 나오건 재판 과정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이 법정에서 불거지는 여러 이슈가 앞으로 수십 년간 영향을 미칠 테고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과연 정보의 자유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각국 정부가 특정 사안을 '기밀'로 묶어두는 건 어디까지 적법한 걸까요? 정보의 자유는 소중하지만, 외교와 안보의 영역에선 기밀도 필요하지요. 우리는 각국의 국익이 충돌하는 불완전한 세계에서 살고 있어요.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