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굶주림 대책법, 천주교 박해 때 백성 감시수단으로 둔갑

입력 : 2019.04.16 03:00 | 수정 : 2019.04.19 10:14

[조선시대 오가작통법]
조선 성종 때 한명회, 백성 굶주리자 "다섯 가구씩 묶어 음식 나누게 하자"
떠돌이 백성 많아 잘 지켜지진 않았죠

최근 중국에서 도입된 스마트 교복이 논란이 됐어요. 스마트 교복을 입고 있으면 학생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학부모가 파악할 수 있어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유괴됐을 때 파악해 대처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이 있겠죠. 반면 학생 입장에서는 사생활 침해일 수 있어요. 수업 시간에 조는지 여부, 화장실에 언제 갔는지 등도 부모님이 다 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와 비슷하게 범죄 예방과 재산 보호 등의 목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CCTV(폐쇄회로TV)도 사생활 침해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죠. 조선시대에도 좋은 목적으로 시작된 제도가 사생활을 침해하고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변질한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제도였을까요?

다섯 집이 힘을 합쳐 흉년을 견디자

조선 제9대 왕 성종 때인 1485년 6월 한명회는 흉년으로 전국의 백성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성종에게 아룁니다. "다섯 가구(家口)를 한 통(統)으로 만들어서 그 안에서 음식을 분배해 주게 하면, 때맞춰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구황 대책으로 다섯 집씩 묶어서 식량을 나눠 흉년을 버티자는 거였습니다.

[뉴스 속의 한국사] 굶주림 대책법, 천주교 박해 때 백성 감시수단으로 둔갑
/그림=안병현
이 정책은 '오가작통(五家作統·다섯 가구를 묶어 하나의 통으로 편성한다)'이라고 불립니다. 조선 최고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오르죠. '경국대전'에 따르면 한성부에서 방(坊) 밑에 통을 조직하여 다섯 집을 1통으로 하여 통주(統主)를 두고, 방에 관령(管領)을 책임자로 두게 했으며, 지방은 5통을 1리(里)로 하고 몇 개의 이(里)를 묶어 면(面)을 구성하고 면마다 농사를 관장하는 일을 맡은 권농관을 두어 담당하게 하였어요.

하지만 흉년이나 전란 등으로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도는 백성이 많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해요. 숙종 때인 1675년에 세부 규칙인 오가통 사목 21조를 정하면서 강화됐어요.

한 집이 잘못하면 다섯 집이 벌 받아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세금이나 부역을 피하기 위해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일정한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백성이 늘어납니다. 그래서 이들을 찾아내고 처벌하는 목적으로 오가작통법을 강력하게 실시하게 됩니다. 즉 누군가 세금을 안 내거나, 부역을 피하면 오가작통법에 속한 이웃집에 책임을 물어 대신 부담하게 하는 제도로 이용되었어요. 다섯 집을 연대책임으로 처벌한 것이지요.

이를 적용한 대표적인 사례가 순조와 헌종 시절에 이루어진 천주교 탄압이에요. "수령은 각기 그 지경 안에서 오가작통법을 닦아 밝히고, 그 통내에서 만일 사학(邪學)을 하는 무리가 있으면 통수가 관가에 고하여 징계하여 그 씨를 남기지 마라." 1801년 신유년에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 임금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며 오가작통법을 통해 사학의 무리, 즉 천주교인을 잡아들이라 내린 명령이에요.

다섯 가구의 식구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등 개인의 사생활을 몰래 살펴서 혹시 천주교인처럼 보이는 수상한 점이 있으면 통주나 수령에게 보고하게 하였어요. 만약에 천주교인을 고발하지 않으면 한 통 사람들이 함께 처벌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하게 하였지요. 오가작통법은 흉년으로 기근이 심할 때 백성들을 굶주림에 벗어나게 도와주는 대책으로 마련됐어요. 그러나 사생활과 기본권을 침해하고 연대책임을 지우는 사회 통제 수단으로 변질됩니다.


[일제강점기 '애국반'과 북한의 '5호담당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애국반'을 만들어 우리 국민을 감시하고 수탈하는 데 이용했어요. 1938년 7월 10가구를 한 단위로 묶어 '애국반(愛國班)'이라고 불렀죠. '애국반'은 사상 통제에서부터 배급 통제, 전투병 모집, 금은 식기 공출 등을 하는 기본 단위였죠. 전시 동원 체제하에서 일제가 충성을 강요하며 한국인을 통제하는 방법이었어요.

북한이 1959년부터 시행한 '5호 담당제'는 오가작통법을 본떴어요. 다섯 집마다 한 집에 북한 체제 선전원을 배치하는 제도라고 해요.


♣ 바로잡습니다

▲15일 자 A25면 '뉴스 속의 한국사' 삽화 내용 중 기해박해는 1893년이 아니라 1839년이라 바로잡습니다.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저술가 기획·구성=양지호 기자